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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부에 대한 성경의 균형 잡힌 시선

📑 목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은 가난과 부를 단순한 경제적 상태나 윤리적 평가로 환원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인간의 삶의 태도 안에서 통합적으로 조명합니다. 본 글에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균형 잡힌 경제 신학을 살피고, 성서 신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거울로 삼아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가난과 부에 대한 성경의 균형 잡힌 시선

    1. 서론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은 많은 부를 죄악으로 단정 짓지 않으며, 동시에 가난을 무조건적으로 미덕으로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관통하는 핵심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와 공동체 속에서의 책임입니다. 특히 원어 분석, 경제 윤리, 그리고 성경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통해 보면, 성경은 물질 자체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마음의 방향을 강조합니다.


    이 글은 가난과 부를 둘러싼 성경의 균형 잡힌 시선을 탐구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실천적 통찰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 창세기와 모세오경이 제시하는 물질의 신학

    창세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히브리어 צֶלֶם (tselem, 첼렘))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관리하고 번성하게 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창세기 1:28).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땅을 관리하고 번성하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물질(부) 자체를 창조 질서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학자 존 골딩게이(John Goldingay)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결핍을 의도하신 적이 없으며,

    창세기의 ‘풍성함 (abundance)은 하나님 나라의 원형을 반영한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2장의 '에덴의 넉넉함'은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피조 세계를 위해 본래 설계하신 조화로운 질서를 나타냅니다. 골딩게이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이 결핍 속에서 경쟁하거나, 생존 때문에 타인을 지배하거나, 재산을 통해 힘을 독점하는 구조를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조의 질서는 철저히 '나눔과 상호의존'에 기반한 공동선(共通善)의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인간의 탐욕과 죄성이 이러한 창조 질서를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기록합니다.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곳곳에서 하나님은 공동체 내부의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가난이 세습되는 구조가 생겨나는 것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성경의 관심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경제적 구조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도록 재정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있습니다.

     

    레위기 25장의 희년(Jubilee) 제도는 이러한 구조적 관점을 잘 보여 줍니다. 희년은 단순한 채무 탕감 이벤트가 아니라,

    1. 땅의 원주권을 하나님께 두고,
    2. 경제적 불평등이 누적되는 것을 주기적으로 초기화하며,
    3. 가난의 대물림을 차단하는 경제적 리셋 장치였습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매우 독특하고 급진적인 제도입니다. 희년은 이스라엘 공동체 경제가 단순히 시장 논리(market logic)에 의해 작동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조적 약자 보호와 공평의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제도였습니다.

     

    이를 구약학자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
    '이스라엘의 경제 구조는 하나님 주권의 구체적 구현이며, 희년 제도는 하나님의 정의가 제도적 형태로 드러난 가장 분명한 사례'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역시 희년을 “하나님의 경제”라고 부르며, 희년이 자본과 재산을 절대화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제동을 거는 신학적 경제 장치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물질에 대한 성경의 관점은 단순히
    “부자가 덕을 베풀어야 한다”
    “돈을 욕심내지 말라” 와 같은 개인윤리를 말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은
    재산·경제·소유·노동·가난의 문제를 '하나님 나라의 정의'의 관점에서 구조적으로 다루며, 공동체 전체가 공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경제관은 도덕적 권면이 아닌, 하나님이 설계하신 공공 정의 구조의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3. 지혜문학(욥기,잠언,전도서)이 말하는 부와 가난의 균형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잠언은 부를 지혜의 열매로 묘사하지만(잠언 10:22), 동시에 재산만능주의를 강하게 경고합니다.

    특히 잠언 30장 8절은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새번역)라고 고백하며, 물질의 균형을 신앙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합니다.

     

    이 고백은 인간의 탐욕이 영적 판단력을 흐린다는 사실을 전제하며, '필요한 양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또한 이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예수의 기도(마 6:11)와 신약적 경제 윤리로 연결되며, 욕망의 무한 확장을 제어하는 지혜의 영성을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더 나아가 잠언 30장의 기도는 인간의 경제적 위치가 신앙과 품성에 미치는 영향을 사실적으로 드러냅니다.

    본문은 부유함이 교만을 낳아 하나님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고(신 8:12–14), 반대로 극심한 가난은 절망과 범죄의 유혹으로 사람을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삶의 긴장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양식’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물질적 최소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곡되지 않는 경건한 삶의 조건을 의미합니다. 이는 물질을 신앙의 도구적 차원에서 해석하게 하며, 경제적 상태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의 상태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잠언 30장 8절은 고대 근동의 경제적 세계관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당시 주변 문화에서는 부를 신들의 축복과 권력의 상징으로 신성시했지만, 지혜문학은 부와 가난 모두가 인간을 시험하는 영역임을 밝히며, 가치의 중심을 ‘하나님의 주권적 공급’에 둔다는 급진적인 신학적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관점은 부를 긍정하되 그 목적을 제한하고, 가난을 연민하되 그것을 낭만화하지 않으며, 모든 경제적 상태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재해석하는 성경적 경제 윤리의 토대를 형성합니다.

     

    따라서 잠언 30장의 기도는 시대를 초월하여, 신앙인이 물질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며 공동체적 선을 추구하도록 부르는 영적 나침반과 같은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잠언의 경제관은 번영과 절제를 동시에 요구하며, 부를 축적하는 목적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선의 실현"이라고 설명합니다.

     

    브루그만은 지혜문학의 경제사상을 '관계적 경제(relational economy)'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와 물질이 개인의 소유권 개념을 넘어 하나님·이웃·창조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잠언에서 말하는 '부의 복됨'은 단순한 소득 증가가 아니라, 공동체 내 정의의 확장, 약자 보호, 사회적 신뢰의 형성과 같은 ‘관계적 샬롬’의 회복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지혜문학(욥기,잠언,전도서)은 부를 긍정하거나 가난을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절제, 정의, 책임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경제적 균형 감각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균형은 (1)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2) 정직한 노동의 성실함, (3) 탐욕의 절제, (4) 공동체를 향한 나눔과 책임이라는 네 가지 원리를 통해 구현됩니다.

     

    결국 지혜문학은 물질을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마음과 선택, 그리고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그 의미가 규정된다는 신학적 통찰을 제시합니다.

    4.예언자 전통이 일깨우는 경제 정의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아모스 선지자는 아모스 5장 11절에서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탐욕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구조적 억압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예언적 선언이었습니다.

     

    아모스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외형적으로 번영하던 시기였지만, 그 번영의 이면에는 토지 독점, 불공정 세금, 사법적 부패, 상업적 착취가 결합된 구조적 불의가 있었습니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이런 시스템 자체를 심판하신다고 말한 최초의 사회비판자였습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는 "예언자들은 부의 윤리가 아닌 부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사회경제 시스템에 반영되도록 촉구했다"고 주장합니다. 라이트의 관점은 예언서를 단순히 개인의 도덕 문서로 읽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정의가 공적 영역, 즉 경제·법·토지·사회 구조 전반에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 주는 신학적 지도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구약 예언자들은 '부의 중립성'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가 어떻게 획득되었느냐, 그 부가 어떻게 사용되느냐, 그리고 그 부가 공동체 내에서 어떤 사회적 결과를 낳느냐를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예언자들의 관심은 '개인이 부유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 부가 공동체의 약한 자들—가난한 자, 과부, 고아, 이방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 이사야, 미가 등의 예언자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굳어지는 것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8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는'(새번역)  자들을 책망하며, 토지 독점과 부의 집중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한다고 말합니다.


    미가 2:1–2는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을 고발합니다. 이는 단순한 탐욕을 넘어, 제도화된 경제적 폭력의 형태였습니다.

     

    이러한 본문들은 예언자들이 경제적 죄를 개인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죄(사회 구조적인 죄)로 인식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시스템적 죄는 사회의 약한 사람들을 짓누르고, 공동체의 연대를 파괴하며,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 안에서 반드시 제거돼야 할 불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가난을 단순히 한 개인의 실패로 보지 않으며, 부의 축적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구조적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신중하게 고려합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부 자체가 아니라, 부가 공동체 안에서 어떤 관계적 결과를 낳는가입니다. 이 관점에서 가난은 종종 부자의 탐욕 또는 사회 시스템의 불의에 의해 발생하는 결과로 나타나며, 구약성경은 이를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 실현이라고 말합니다.

    5. 예수의 경제 가르침: 부의 목적과 방향성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는 누가복음 12장 16절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새번역)로 시작하는 비유는 재산의 많은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 부유하지 못한 삶'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부의 위험성을 설명합니다.

     

    이 비유(눅 12:16–21)에서 예수는 부자의 실패를 도덕적 비난이나 금욕적 가난의 옹호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가 많은 곡식을 쌓아 두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곡식의 목적과 방향성이 자기 자신에게만 향해 있었다는 것, 즉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새번역)라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이 부자는 하나님을 삶의 종착점으로 두지 않았고, 공동체와 약자를 향한 책임도 부재했습니다. 요컨대, 그의 부는 관계적 가난을 초래한 것이었습니다.

     

    신약학자 조엘 그린(Joel Green)은 이 비유를 해석하면서 "이 부자의 문제는 재산 그 자체가 아니라, 재산이 그의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구조적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공동체를 향한 개방성을 잃어버린 상태를 “신앙적 폐쇄성”이라 부르며, 이 폐쇄성이 결국 자신을 지배하는 또 다른 '주인'을 선택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예수께서 말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 6:24, 새번역)는 선언은 바로 이러한 정체성의 이중 주인 문제를 가리킵니다.

     

    또한 누가복음의 신학적 맥락에서 볼 때, 예수는 재물의 위험을 단순히 탐욕이나 낭비의 문제로 구분하지 않고,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앙적 힘으로 다룹니다. 이는 헬라어 πλεονεξία(pleonexia, 플레오넥시아, 뜻: 끝없이 더 가지려는 욕망 )  즉 우상숭배와 동일선상에 놓는 바울의 신학과도 일치합니다(골 3:5).

     

    즉, 예수님이 경고한 부의 위험성은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신앙적·구조적 차원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인간이 재물을 많이 가질수록 발생하는 '능력에 대한 환상'을 해체하십니다.

    부자는 창고를 짓고 미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지만, 하나님은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눅 12:20, 새번역)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고대 유대의 지혜문학(욥기, 잠언, 전도서)이 일관되게 강조했던 사실, 곧 미래의 통제 가능성은 인간에게 있지 않으며, 재물은 영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메시지입니다.

     

    누가복음 학자인 크레이그 블롬버그(Craig Blomberg)는 이 비유를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이 추구하는 것은 분배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해설합니다. 즉, 하나님은 부유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시지만, 부가 자기 자신만을 향할 때, 부는 신앙적 파탄의 구조적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6. 대한민국의 현실 적용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한국 사회는 OECD 국가 중 자산 양극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부의 세습 구조 또한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균형 잡힌 시선은 다음과 같은 적용점을 제공합니다.

    1. 부유한 사람에게는 나눔과 공정한 경제 참여에 대한 책임을 요구합니다.
    2.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상황이 죄나 실패가 아니라는 성경적 위로를 제공합니다.
    3. 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경제 구조를 지지해야 합니다.
    4. 개인은 물질을 최종 목적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적 경제관은 결국 경제적 위치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와 공동체적 책임의 회복을 요구합니다.

     

    '삶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만들고 통제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에 대해 누가복음 12장 19절, 20절에 기록한  부자와 예수가 한 말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눅 12:19-20, 새번역)을 정리하여 질문으로 만들어 보면 이렇습니다.


    "너는 부를 통해 통제 하지 못하는 자신의 미래가  안전하다고 환상 속에서 살것인가, 아니면 현재 하나님께 대해 부유한 자로 살것인가"

    7. 결론

    성경은 부를 축복으로, 가난을 벌로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내용을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가난과 부에 대한 성경의 균형 잡힌 시선으로 정리하면 
    부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와 공동체 속에서의 책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언자 전통의 정의, 지혜문학의 절제와 공동체 선의 실현, 예수의 하나님 중심적 경제관을 바탕으로 가난과 부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삶으로 초대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