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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노동의 가치 — ‘땀 흘림’의 의미

📑 목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은 노동을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 형상으로 주어진 소명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창세기·지혜문학·바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땀흘림의 의미를 해석한 후 현대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살펴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 속 노동의 가치 — ‘땀 흘림’의 의미

    1. 왜 성경은 '노동하는 인간'을 강조하는가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긴 나라에 속합니다. 그러나 노동을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만 규정하는 시각도 여전히 강합니다. 성경은 노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은 노동을 인간 존재의 본질과 깊이 연결된 신학적 주제로 설명합니다. 성경은 노동을 저주로 규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창조 질서 속의 '선한 소명'으로 제시합니다. 특히 창세기는 인간이 타락하기 훨씬 이전부터 노동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 질서의 일부였음을 밝히며, 타락 이후에 등장하는 ‘땀 흘림’은 노동의 본질적 의미가 아니라 노동의 조건이 변화한 결과임을 드러냅니다.

    2. 창조 기사에 나타난 노동 - 창조 세계를 돌보는 고귀한 행위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창세기에서 노동은 인간의 범죄 이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죄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창세기 2:15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창 2:15, 새번역)

    이때 사용되는 히브리어 '맡아서'는 עָבַד (abad, 아바드)이며, 섬기다, 봉사하다, 노동하다, 예배하다 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 폭넓은 의미를 지닙니다. 히브리어 '돌보게'는 שָׁמַר(shamar, 샤마르)로 지키다, 보호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인간에게 주어진 노동은
    '억지로 하는 고된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창조 세계를 돌보고 가꾸는 고귀한 역할'이었습니다.


    고든 웬햄(Gordon Wenham)은 "아바드(abad)는 일과 예배를 분리하지 않는 히브리적 사고를 보여 주며, 인간의 노동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적 행위였다”고 해석합니다.
    즉 노동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신성한 사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타락 이전 노동은 고통의 수단이 아니라 창조 세계를 돌보고 풍요롭게 만드는 하나님과의 협력(co-creation)이었습니다.

     

    창세기 학자인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창세기 2장을 해석하며, '노동은 창조 세계를 유지하는 하나님의 지속적 행위에 인간이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다른 구약학자 개러드 본로드(Gerhard von Rad) 역시 '인간의 노동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서 나오는 활동'이라고 말하며 노동의 본질을 창조 질서 안에 위치시킵니다.

    3. 타락 이후의 노동 - '땀'의 의미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타락 이후 노동은 고통을 동반하게 되지만, 노동 자체가 벌이 된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 3:19, 새번역)

    여기서 '땀'은 히브리어 זֵעָה(ze'ah, 제아)로,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 노동의 고된 성격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는 노동의 본질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노동의 환경과 결과가 불완전해졌음을 말합니다.

     

    학자 존 월튼(John Walton)은 '창 3:19의 땀은 노동의 가치 훼손이 아니라, 인간이 죄로 인해 경험하는 생산성의 한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즉, 노동은 여전히 선하고 의미 있으나, 그 과정이 더 어렵고 불완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브루스 월트키(Bruce Waltke) 역시 이 구절을 설명하며 "땀 흘림은 노동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노동의 환경이 저주받아 인간이 일의 목적보다는 생존의 압력에 더 많이 노출되게 된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노동 자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노동이 더 이상 순수한 창조적 기쁨만으로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4. 구약의 노동신학 - 정의와 존중, 공동체적 선 실현

    구약성경에서는 노동을 인간의 존엄성과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24장에서 하나님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하게 금하며, "가난한 사람이나 헐벗은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노동의 결과뿐 아니라 노동 과정에서의 정의와 존중을 강조하는 구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세계적 구약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는 "성경의 경제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성보다 인간 존엄의 보존이며, 하나님은 노동을 통해 인간이 공동체적 선을 실현하도록 부르신다"고 주장합니다.
    이 관점은 신자들에게 노동은 개인의 성공이나 성취를 넘어, 하나님 앞에서의 소명(vocation)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알려 줍니다.

     

    반면, 지혜문학에서는 노동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잠언은 근면함과 지혜를 긴밀히 연결합니다.
    '손이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사람은 부유하게 된다.'(잠10:4, 새번역)

    잠언에서 게으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עָצֵל(atsel, 아첼)은 단순히 '일을 안 하는 것'을 넘어서
    '삶 전체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지혜문학은 노동의 목적을 '자기 이익'에만 두지 않습니다.
    노동을 통해 이웃을 돕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강조됩니다.

    또한 학자 브루스 월트키(Bruce Waltke)는 지혜문학의 노동관을 '하나님의 질서에 참여하여 공동체에 선을 공급하는 삶'으로 설명합니다.

    5. 바울의 노동신학 - 자립, 공동체 섬김, 그리고 소명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바울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노동을 매우 중요한 신앙적 실천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살후 3:10, 새번역)라는 말을 하는데 

     

    이 구절은 게으른 사람을 정죄하려는 말이 아니라,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삶에 대한 경고입니다.

     

    바울은 사역 중에도 장막을 만드는 텐트메이킹 노동(텐트를 만드는 일)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노동이 복음 사역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살전 2:9)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수고하다'는 헬라어 κοπιάω(kopiaō, 코피아오)로,
    κοπιάω는 헬라어에서
    “지치도록 일하다, 고되게 수고하다, 몸이 쇠약해질 정도로 노력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단순히 “일하다”가 아니라
    피곤함, 고통, 인내가 동반된 노동을 의미하는 강한 단어입니다.

     

    바울 서신에서 κοπιάω는 자주 나오며, 특히 ‘복음 사역의 헌신과 고난’을 강조할 때 사용됩니다.

    대표적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10절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새번역)”

    여기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가 바로 ἐκοπίασα(ekopiasa),
    즉 코피아오의 단순과거형입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분의 활력을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κοπιῶ kopiō).(새번역)”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새번역)”

    여기서도 κοπιάω가 사용됩니다.

     

    바울이 κοπιάω라는 강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단순 노동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자신이 겪은 헌신, 희생, 신체적 고통까지 포함한 전인적 노력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신약학자 고든 피(Gordon Fee)는
    "바울의 κοπιάω(코피아오)는 육체적 노동을 넘어, 사도의 존재 전체가 소진되는 형태의 사역적 헌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조엘 그린(Joel Green)은
    바울의  κοπιάω(코피아오)가 '그리스도 중심적 삶의 실천, 공동체를 위한 자기소모적 사랑의 몸부림'을 드러낸다고 분석합니다.

    6. 성경의 노동관으로 보는 오늘의 한국 사회

    오늘날 대한민국은 장시간 노동, 직무 스트레스, 불안정 고용, 감정노동 증가 등 다양한 노동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문제, 인권침해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은 노동이 인간의 본질적인 부르심임을 강조하며, 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노동자의 권익 보호, 공정한 근로 문화, 안식과 회복의 제공에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에게는 자신의 노동을 단순한 생계의 수단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창조적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직업이 무엇이든,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천하는 삶을 지향하는 태도입니다.

     

    정리하면 성경은 노동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1. 노동은 하나님의 형상을 실현하는 창조적 활동이다.
    2. 땀은 저주가 아니라 책임의 상징이다.
    3. 노동은 개인의 부와 성공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도구이다.
    4. 성실함은 노동의 덕목이며, 이는 영적 실천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제시하는 노동관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라”는 윤리적 요구가 아니라,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질서와 공동체의 선을 실현하는 삶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