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님의 비유 중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 달란트의 비유는 종종 자기계발이나 투자 성공의 교훈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유대적 역사·경제 배경, 종말론적 맥락, 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 전체와 밀접하게 연결된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와 누가복음 19장의 므나 비유는 표면적으로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복음서의 신학적 강조점에 따라 내용과 구조가 달라집니다.
본 글에서는 헬라어 원문, 유대 경제 제도, 그리고 성서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두 비유의 차이와 공통점을 분석하며, 그 속에 담긴 예수님의 경제·종말론적 메시지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1.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제자도 실천
성경에 나타난 경제 관념 가운데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비유에서 핵심 단어인 '달란트'는 헬라어 τάλαντον (talanton, 탈란톤)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이해하려면 당시 유대인의 사회경제적 현실과 제국적 구조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달란트(헬라어 τάλαντον, talanton, 탈란톤)는 당시 약 20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으로, 단순한 소액이 아니라 주인의 재산 상당 부분에 해당했습니다. 즉, 비유 속 종들에게 맡겨진 금액은 개인적 재산을 넘어, 주인의 경제적 권력과 신뢰가 종들에게 위임된 사례였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대규모 상속재산이나 토지 관리, 세금 징수 등에서 “수탁자(trustee)” 개념이 중요했습니다. 주인과 종(혹은 관리자) 사이에는 법적 계약보다는 신뢰와 책임이 핵심이었으며, 재산의 관리 실패는 단순한 손해를 넘어 사회적·윤리적 책임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달란트 비유는 단순한 재산 증식이 아닌, 신뢰 받은 자의 책임과 충성, 그리고 하나님 나라 실천을 가르치기 위해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 법전인 미슈나와 탈무드에서는 상속재산이나 관리인의 책임에 관한 규정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 수탁자의 책임: 재산을 맡은 자가 주인의 의도와 다르게 관리하면 법적·윤리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함.
- 재산 증식의 장려: 단순히 원금 보존이 아니라, 재산을 늘리기 위한 정직한 노력과 적극적 관리가 강조됨.
예를 들어, Baba Batra 173a에서는 토지와 재산을 관리하는 종에게 원금과 더불어 적절한 이익을 창출할 책임이 있음을 명시합니다.
이는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은 종이 각각 더 많은 수익을 낸 장면과 직접적으로 유사합니다. 단, 유대 문헌에서는 주인의 귀환이나 심판의 신학적 의미까지 강조하지는 않고, 실제적 책임과 사회적 신뢰를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공인된 번역인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기록합니다.“그는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나누어 주고 떠났다.”(마태복음 25:15, 새번역)
여기서 “능력”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δύναμις (dynamis, 뒤나미스)로, 단순히 타고난 재능이나 경제적 판단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명을 맡아 수행할 수 있는 책임감, 내적 성숙도, 영적·윤리적 역량을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마태 공동체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가운데 현실 세계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 지침으로 이 비유를 이해했습니다. 즉, 달란트 비유는 단순히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대비가 아니라, 종말론적 신앙의 실천을 요구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영국의 신약학자 N. T. 라이트(N. T. Wright)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단순히 재능 개발이나 경제적 지혜의 교훈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이 비유가 마태복음 전체에 흐르는 종말론적 제자도(eschtological discipleship)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라이트에 따르면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상징합니다. 주인의 부재 기간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재림까지의 시간, 즉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는 교회의 역사 전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종들에게 요구되는 행동은 단순한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적극적·책임적 행동입니다. 라이트는 이 비유가 제자들에게 “현재의 삶을 마치 주인이 곧 돌아올 것처럼 살아가라”고 촉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윤리적 성실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 책임, 복음 증거, 연약한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적 정의의 실천,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삶을 포함합니다.
라이트는 특히 주인의 평가 기준을 깊이 있게 해석합니다. 그는 주인이 종에게 맡긴 것이 “얼마나 불어났는가”라는 외형적 결과보다, 종들이 주인의 뜻을 신뢰하고 그 뜻을 따라 과감하게 행동했는가를 평가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달란트 비유는 두려움이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실천적 믿음을 강조합니다. 한 달란트를 묻어둔 종이 책망받은 이유는 실패가 아니라, 주인을 오해하고 두려워하여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결국 라이트에게 달란트 비유는
미래의 심판을 두려워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천적으로 살아내라는 강력한 초대입니다.
제자는 주인의 부재 속에서도 그분의 뜻을 신뢰하며, 맡겨진 사명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 정치적 현실과 하나님 나라의 지체
누가복음 19장 11–27절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달란트가 아닌 므나를 사용합니다. 므나는 헬라어 μνᾶ (mina, 미나)로, 당시 약 100일 치 품삯 정도 되는 중간 규모의 금액입니다. 즉, 달란트와 달리 모든 종에게 동일한 금액이 주어졌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누가는 이 비유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즉시 하나님 나라가 나타날 것이라는 대중의 잘못된 기대,
예수님의 왕권이 곧바로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잠시 지연되며, 그 기간 동안 제자들에게 맡겨진 책임이 강조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해 예루살렘 입성 앞에서 배치하여, 군중들이 즉시 하나님 나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던 분위기를 교정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누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덧붙여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이 비유를 드신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누가복음 19:11, 새번역)
세계적인 누가복음 연구자 '조엘 비 그린(Joel B. Green)' 과 '존 놀랜드(John Nolland)'는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가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다고 설명합니다.
당시 유대 역사에서 매우 잘 알려진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s)'의 왕위 승인 과정입니다. 그는 아버지 헤롯 대왕 사후 유대를 통치하기 위해 로마 황제에게 직접 가서 왕권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켈라오는 폭정과 잔혹한 통치로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깊은 반감을 사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한 잔혹한 진압은 특히 민심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 지도자들과 많은 백성은 아켈라오가 왕위를 얻는 것을 반대하며, 그가 로마로 떠날 때 사절단을 조직하여 함께 로마로 가 그의 즉위를 반대하는 진정서(anti-petition)를 황제에게 제출했습니다. 이들은 아켈라오가 왕이 될 경우 유대가 더 큰 혼란과 억압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은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 고대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고대 유대 사회에서는 매우 유명한 정치적 배경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누가복음 19장의 비유는 청중이 즉시 떠올릴 수 있는 현실적 사건을 토대로 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많은 신약학자들, 특히 존 놀랜드(John Nolland)나 조엘 비 그린(Joel B. Green)은 예수님이 므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즉시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군중에게 정치적 현실과 하나님 나라의 지체를 연결하여 교정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헤롯 아켈라오 사건은 단순히 역사적 배경을 넘어서, 비유 속 “귀족이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에 가는 이야기”의 현실감을 높여 주며, 당시 청중의 머릿속에 생생한 정치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배경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쉽게 성취되지 않으며, 제자들에게는 기다림 속에서도 충성스럽게 맡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9장 므나 비유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즉시 하나님의 나라가 정치적·군사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군중에게 다음 두 가지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즉각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비유 속 귀족이 왕위를 받는 과정이 길어진 것처럼,
예수님의 왕권도 당시에 즉시 정치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며,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 이후의 시간 속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예수님의 왕권은 거부당하지만 결국 확립된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지연 기간 동안 제자들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귀족이 종들에게 각자 한 므나를 맡기고 떠나듯,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사명을 주셨으니 왕의 부재 기간 동안 제자들은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충성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3.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
두 비유는 표면적으로 "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맡기고 떠난다"는 틀을 공유하며 다음의 공통점을 갖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책임 혹은 동일한 사명을 맡기신다.
둘째, 주인의 부재 기간은 하나님 나라의 지연 혹은 종말까지의 시간을 상징한다.
셋째, 핵심 메시지는 부의 증가가 아니라 맡겨진 것에 대한 충성이다.
넷째, 주인의 귀환은 하나님의 심판과 평가를 은유한다.
차이점
그러나 두 비유는 신학적 강조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금액의 차이와 역할의 차이
마태: 달란트(막대한 금액), 능력에 따라 다르게 분배.
누가: 므나(중간 규모 금액), 모든 종에게 동일하게 분배.
이는 마태가 각자의 책임과 충성의 무게를 강조한다면, 누가는 동일한 복음 사명이 각자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더 초점을 둡니다.
비유의 배경
마태: 종말 심판과 하나님 나라 준비라는 신학적 맥락이 중심.
누가: 예루살렘 입성 직전, 하나님 나라 도래에 대한 오해 교정이 중심.
평가 기준
마태: 각기 다른 양을 받았기 때문에 평가도 상대적이다.
누가: 동일한 양을 받았으므로 평가 기준이 절대적이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은 이 차이를 두고 "마태는 공동체의 사명 수행을 강조하고, 누가는 제자가 하나님 나라의 지연 속에서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를 강조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주인의 성격 논쟁
누가복음의 주인은 매우 엄격한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예: Casey, 케이시)은 이 인물을 하나님의 직접적 상징이라기보다 세속 권력자의 모습을 차용한 반어적 장치로 보기도 합니다.
반면 마태에서는 주인의 성품보다 종의 충성 자체가 강조됩니다.
4. 오늘 우리에게 주는 두 비유의 신학적 메시지
두 비유가 공통적으로 전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각자에게 능력 혹은 동일한 사명을 맡기셨으며 그 사용에 대해 평가하신다.
둘째, 경제적 규모는 핵심 메시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맡겨진 사명에 대한 충성이다.
셋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지연될 수 있으나 그 시간은 충성의 시험의 시간이다.
넷째, 부와 재능은 공동체적 유익, 정의 실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도구이다.
마태복음은 책임의 무게를, 누가복음은 기다림 속 충성을 강조합니다. 두 비유는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제자된 삶이란 맡겨진 사명을 주인의 성품을 신뢰하며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임을 함께 가르칩니다.
5. 결론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와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는 종종 같은 이야기로 오해되지만, 그 신학적 초점은 분명히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수탁자적 책임과 종말론적 충성을 강조하며, 누가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지연 속에서 제자가 어떻게 일상에서 신실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두 비유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과 사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결국 이 두 비유는 오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당신은 맡겨진 사명을 어떻게 사용하며, 주인의 귀환을 어떻게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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