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부(富, Wealth)는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논쟁의 중심에 있어 왔습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재물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는 종종 오해와 극단적인 해석을 낳았습니다. 일부는 청빈을 절대적 미덕으로 간주하며 부 자체를 죄악시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번영 신학을 통해 부를 하나님의 축복의 증표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학자들의 시각을 통해 하나님이 전하고자 했던 '부(富)'에 대해 조명하고자 합니다.

1. 성경 원어로 본 '부(富)'의 다층적 의미
창세기 1장–2장은 물질 세계 전체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창 1:31, 표준새번역)라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물질 그 자체가 악하거나 부정하다는 이원론적 관점은 성경의 창조 신학과 거리가 멉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구약성경에서 부를 나타내는 가장 흔한 단어는 'חֹסֶן, (Chosen,호센, 뜻:재산/힘)'과 ' עֹשֶׁר (Osher, 오쉐르 , 뜻:부/번영)'입니다.
- 'חֹסֶן(Chosen, 호센 , 뜻:재산/힘): 이 단어는 단순히 재산을 넘어 권력이나 능력의 의미까지 내포합니다. 이는 부의 사용이 개인을 넘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 'עֹשֶׁר(Osher, 오쉐르, 뜻:부/번영): 이 단어는 번영, 풍요로움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의 한 형태로도 묘사됩니다. 이는 부 자체의 오해를 풀고, 하나님의 은혜로 올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신약성경에서 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는 'πλοῦτος(Ploutos, 플루토스, 뜻: 부/재산)'입니다.
- ''πλοῦτος(Ploutos, 플루토스, 뜻:부/재산): 신약은 부 자체를 정죄하기보다는 부의 소유자가 갖는 태도와 부가 유발하는 영적 위험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디모데전서 6장 17절은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명령하여 교만해지지도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소망을 두지도 말고'(표준새번역)라고 명합니다.
이러한 원어적 접근은 '부(富)'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수 있는 능력이나 풍요일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마음을 쉽게 타락시킬 수 있는 신앙적 위험 요소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2. 창세기 학자들이 해석하는 '풍요'와 '창조 목적'
'고든 웬함 (Gordon Wenham)'과 같은 학자들은 창세기 1장 28절의 "땅에 충만하여라.땅을 정복하여라"(표준새번역)는 명령이 단순한 착취가 아닌,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 세계의 자원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청지기적 소명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관점에서,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부(富)는 자연을 다스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원과 생산물의 합산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물입니다.
'데렉 키드너 (Derek Kidner)' 교수는 창세기 2장에 나타난 아담의 '경작하고 지키는' 행위를 통해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당한 노동의 결과로 얻는 풍요와 재화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이라는 풍요로운 환경을 만드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서 결핍보다는 풍요를 인간의 원래 상태로 의도하셨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며, 이는 기독교 경제관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3. 부(富) 에 대한 부정과 긍정, 부(富)에 대한 책임 강조
구약성경 지혜문학에 속하는 잠언은 부에 대한 긍정과 부정 모두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긍정하는 부분은 정직한 노동과 지혜로운 삶을 통해 얻는 부입니다. 다시말해서 정직한 노동과 지혜로운 삶을 통해 얻는 부는 긍정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의 계획은 반드시 이득을 얻지만"(잠 21:5, 표준새번역)이라는 말씀은 부가 선한 방향으로부터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정하는 부분은 부정한 이익을 경계하는 부분입니다. "부정하게 모은 재물은 쓸모가 없지만"(잠 10:2, 표준새번역)라고 말합니다. 이는 부 자체의 부정성보다는 죄로 물든 인간 욕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존 골딩게이(John Goldingay) 역시 "구약의 윤리에서 부는 하나님의 선물일 수 있으나, 동시에 인간의 죄로 인해 억압과 착취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탐욕의 문제는 결코 가볍게 취급되지 않으며, 성경은 일관되게 이를 경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의로운 사람에게 허락된 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선을 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즉, 부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 'צְדָקָה(히브리어 tsedaqah, 체다카, 뜻: 의로움·정의)' 을 드러내는 기준이 됩니다.
특히 잠언은 반복적으로 다음과 같은 원리를 가르칩니다.
- 의로움은 부보다 더 가치가 있다
잠언은 “재물보다 명예가, 은이나 금보다 은혜가 더 낫다”는 내용을 통해, 의로움과 올바른 성품이 부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합니다. - 의로움은 지속 가능한 번영을 낳는다
히브리 사상에서 의로운 삶은 하나님의 질서에 조화를 이루는 삶이며, 이러한 삶은 장기적으로 안정과 풍요를 가져온다고 이해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결과주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에 심어 놓으신 도덕 질서를 존중하는 삶의 열매라는 의미입니다. - 부는 약자를 돕는 의로움의 통로다
체다카는 ‘의로움’이면서 동시에 ‘자비로운 나눔’을 의미하는 뉘앙스를 지닙니다. 따라서 지혜문학은 부가 주어졌다면 그 부는 고아, 과부, 가난한 자를 향한 구체적 실천의 도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부의 사용이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을 드러내는 방식이 됩니다.
결국 구약성경의 잠언, 시편이 속하는 지혜문학은 부를 단지 경제적 축복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더욱 선하게 만드는 의로움의 실천 수단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부의 목적은 삶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름을 드러내는 데 있다”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율법서인 신명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부를 누릴 경우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여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신 8:18, 개역개정)이라고 명합니다. 부는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렇기에 책임이 동반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십일조, 안식년 제도, 희년 규례는 부의 윤리적 사용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적 보장의 목적은 공동체적 번영에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받은 모든 소득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제도입니다(레 27:30). 이는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목적을 지닌 신앙 행위였습니다.
- 하나님이 주권적 공급자이심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
- 레위인, 성전 사역자, 가난한 자를 위한 사회적 지원 체계
- 구별된 공동체 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십일조는 하나님께 받은 생명과 소산을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린다”는 근본 신앙을 표현하는 행위였습니다.
안식년은 7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빚을 탕감하며, 종을 해방하는 제도입니다(출 23:10–11, 신 15장).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땅의 안식: 농사를 멈추고 자연의 회복을 허락함으로써 창조 질서를 보전합니다.
- 경제적 회복: 빚을 탕감하여 가난한 자가 다시 삶을 재정비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 사회적 정의 실현: 동족 히브리 종을 자유롭게 하여 종속이 영구히 지속되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안식년은 경제·사회·환경적 균형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생명을 회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희년은 49년(7년×7회) 후 50년에 시행된 대규모 회복 제도로, 안식년보다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재설정'기능을 가졌습니다(레 25장).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토지 원소유자 반환
팔렸거나 이전된 토지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빈부 격차가 영구히 고착되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 노예·종의 완전 해방
경제적 실패로 인해 속박된 개인이 희년에는 완전한 자유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 경제적 리셋
희년은 장기적 사회구조 속에서 축적되는 불평등을 정기적·제도적으로 해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희년 사상은 하나님이 땅의 궁극적 소유주이심을 강조합니다.
“땅은 나의 것이다”(레 25:23)라는 말씀은 모든 경제 질서가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 아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4. 예수와 초대교회 — 부의 재해석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약에 오게 되면 예수께서는 부 자체를 금지하지 않으셨지만, 부에 대한 인간의 맹목적인 집착과 오용에 대해서는 가장 강력한 경고를 던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과 재물의 관계를 핵심적으로 관통합니다. 표준새번역으로 이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6:24)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부를 '주님' ( Lord ,헬라어: κύριος , Kyrios)'의 자리에 놓으셨습니다. 성경적 부의 의미는 부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예배를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행 2:44–45, 4:32–37)에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사실을 해석할 때 두 가지 차원을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는 당대 초대교회의 실제 행태(descriptive), 다른 하나는 사도들과 교회 문헌이 제시하는 '신학적 규범(normative)'입니다. 즉, 사도행전은 ‘그들과 같이 하라’는 권면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당시 신앙 공동체의 이상적·역사적 실천을 보고합니다.
초대교회의 나눔을 이해하려면 신약의 핵심 용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 κοινωνία (koinōnia, 코이노니아) — ‘교제, 연대, 공동체성’의 의미를 지니며 재물 공동체성도 포함합니다. 코이노니아는 물질적 나눔이 단순한 자선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 정체성의 표현임을 보여줍니다.
- ἀγάπη (agapē, 아가페) — '무조건적 사랑'으로, 재물 배분의 동기이자 근거입니다. 초대교회의 재물 나눔은 아가페적 연민과 헌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οἰκονομία (oikonomia, 오이코노미아) — ‘청지기적 관리’의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틀을 제공합니다.
이 세 가지 개념은 초대교회의 재물 나눔이 단순한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신앙·신학적 의미를 가진 행위임을 분명히 합니다.
학자들은 초대교회의 나눔 동기를 '종말론적 동기'와 '사랑·윤리적 동기' 두 축으로 설명합니다.
- 종말론적 동기: 초대교회는 예수의 재림이 임박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물질에 대한 소유 관념을 완화시켰습니다. N. T. 라이트(N. T. Wright)는 초대교회의 경제적 선택을 당대의 종말론적·왕국적 기대와 연결지어 설명합니다. 곧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을 경험하면서 성도들은 개인 소유보다 공동체의 필요 충족을 우선시 했습니다.
- 사랑·윤리적 동기: F. F. 브루스(F. F. Bruce) 등은 이 행위가 곧 사랑(ἀγάπη)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봅니다. 개인의 소유를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나누는 행위는 예수의 가르침(이웃 사랑)의 직접적 실천입니다.
두 동기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함께 작동하여 초대교회의 재물 나눔을 촉진했습니다.
학계와 교회 내에서 '사도행전의 나눔이 강제적 집단소유를 의미하는가'라는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 자발성 강조: 많은 학자(예: 제임스 던(James D. G. Dunn))는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나눔이 실제로 자발적이고 자발적 헌신의 표현이었다고 봅니다. 사도행전의 문맥과 후기 바울서신(고린도전서 16장, 고린도후서 8–9장에서의 헌금 규정)을 보면, 초대교회의 재정적 나눔은 규범적으로 조직화된 자발적 기부와 조정의 결합이었다고 주장합니다.
- 공동체 소유 주장: 반면 일부는 텍스트가 공동체적 소유(communal property)를 묘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설득력 있는 해석은 극단적인 '완전한 집단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의 보유와 동시에 필요에 따른 나눔'이라는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의 재물 나눔은 법적 강제의 체계적 소유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자발적·공동 책임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역시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명령하여 교만해지지도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십시오"(딤전 6:17, 표준새번역)라고 권면하며, 부의 윤리적 사용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개인적·자발적 나눔을 제도적으로 조직하는 데 관심을 보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과 고린도후서 8–9장의 각 교회가 체계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돕도록 권면하는 내용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체계적 준비: 바울은 수시로 받을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이 미리 준비하여 드리도록 권합니다(고전 16장). 이는 나눔을 일상적 책임으로 제도화한 사례입니다.
청지기적 책임: 바울은 재물의 영적·윤리적 의미를 강조하며, 부한 자가 겸손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필요한 자를 돌보라고 권면합니다(딤전 6:17~18 참조). 즉, 나눔은 개인적 구원론이 아니라 공동체의 영적·윤리적 삶을 견인하는 제도적·신학적 실천입니다.
5. 부 (富) 에 대한 성경적 원칙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이 말하는 '부(富)' - 하나님은 부(富)를 금하셨을까?에 대한 답이 '아니다'라면, 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바로 청지기 정신이 핵심입니다.
성경은 모든 부와 소유의 궁극적인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신명기 8장 1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18 개역개정)
청지기 정신은 기독교 경제관인데,이러한 인식은 부를 자신의 전적인 소유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맡겨진 자원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6. 부(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선과 정의 드러내기
성경이 말하는 '부(富)' - 하나님은 부(富)를 금하셨을까? 하나님은 부를 금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부는 창조 질서 안에서 선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자원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부는 탐욕·우상숭배·억압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기에 성경은 일관되게 부의 사용 목적을 윤리적·신앙적 관점에서 다룹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
- 부의 위험성은 인간의 죄된 욕망에서 비롯된다.
- 부의 목적은 공동체적 선, 정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 하나님보다 부를 더 신뢰할 때 부는 우상이 된다.
- 성경적 부(富)관은 “금지”가 아니라 '책임과 청지기 정신'이다.
성경은 부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고, 인간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며, 탐심을 유발할 수 있는 극도의 신앙적 위험 요소임을 끊임없이 경고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의 의미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의 태도와 깊이 연관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과 정의를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부(富)를 목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가치 실현을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 비로소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청지기 정신을 갖출 수 있습니다.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 (디모데전서 6:17)께 소망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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