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을 창세기 3장을 중심으로 뱀의 등장 이후 인류 역사에 나타난 경제 질서의 변화와 탐욕과 타락의 기원을 신학적·철학적 시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또한 에덴동산에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던 뱀의 등장 이후 경제 질서가 어떻게 변하였으며, 탐욕과 경쟁, 노동의 왜곡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Ⅰ . 변화의 기운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에덴동산은 인간이 노동과 자원을 조화롭게 사용하던 시공간이었습니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사명을 주셨음을 기록합니다(창 2:15, 개역개정). 이때의 노동은 고통이나 부족함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 질서 안에 포함된 선한 행위였습니다. 다시 말해, 에덴의 경제 질서는 ‘부족함의 경제’가 아니라 ‘충만함의 경제’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뱀의 등장으로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즉 경제 질서 전반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고(창 3:5), 그 결과 노동은 고통으로 바뀌었으며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창 3:17–18). 이 변화는 단순한 농업적 고통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인류 경제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신학적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뱀이 제시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 3:5, 개역개정)라는 유혹에서 출발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같이 되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 כֵּאלֹהִים (ke·'elohim, 케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하나님만이 가지신 판단 기준, 규범 설정권, 질서 부여 능력을 스스로 차지하려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존해야 할 인간이 오히려 하나님의 유일한 자리에 올라서서 삶의 기준을 세우고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 사건이 바로 타락의 본질입니다.
이 과정에서 비롯된 욕망은 단순히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려는 권위의 전복 욕망, 즉 '하나님 없이도 충분하다'는 자율성의 오용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인간의 이러한 욕망이 단순한 탐심이 아니라 '질서 전복적 교만(hubris)'에 가깝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고대 근동의 문맥에서 볼 때, '선악을 알다'는 표현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기준을 스스로 규정하려는 왕적 권한을 의미했기에, 인간의 죄는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주권 찬탈'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구약학자 존 월튼(John H. Walton)은 에덴을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적 공간이라 해석합니다. 그는 “에덴은 하나님과 인간이 협력하여 질서를 유지하던 성전이며, 인간 경제는 이 질서 유지의 일부였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타락은 ‘성전 경제’의 붕괴였습니다.
또한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창세기 3장을 인간 욕망과 경제 구조의 왜곡이 시작된 지점으로 규정합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파괴하는 순간, 자원에 대한 불안이 생기고, 불안은 곧 욕망과 경쟁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현대 경제 시스템의 불평등과 과잉 소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설명하는 신학적 근거가 됩니다.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를 궁극적 결정권자로 여기며, 도덕적 책임보다 개인적 성취와 소유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장 경제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공동체적 윤리와 책임의식이 필요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욕망이 절대적 기준이 되면서 공동체는 약화되고 불평등과 경쟁은 심화됩니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경쟁, 소비 중심적 자기 정체성의 형성 등은 모두 ' כֵּאלֹהִים (ke·'elohim, 케엘로힘)' 의 욕망, 즉 인간이 스스로 세계의 주인이 되려는 마음이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Ⅱ. 신뢰의 깨어짐, 탐욕으로 나아감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창세기 3장에서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정욕' 또는 '욕망'으로 번역될 수 있는 히브리어 'תַּאֲוָה(ta'avah, 타아바)'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식욕이나 감정적 욕망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질서 바깥에서 무언가를 갈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며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창 3:6, 개역개정)라고 말한 장면은 욕망이 신뢰의 붕괴에서 시작됨을 보여 줍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 욕망의 행위는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가 말한 ‘본래적 선의 왜곡’과 일치합니다. 인간의 욕망 자체는 선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욕망은 변질됩니다. 칸트 역시 "인간은 목적이 되어야 하지만 욕망은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경고는 창세기 3장에서 이미 드러난 인간 욕망의 타락과 연결됩니다.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 은 인간의 욕망을 '부족함의 상상력'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미 주신 풍성함을 신뢰하지 못할 때, 인간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더 많이 가지려 한다"고 해석합니다. 이러한 '부족함 경제관'은 현대 소비주의 사회에서도 반복적으로 발견됩니다.
유대교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나-그것 관계' 개념에 따르면, 인간이 대상을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인간성은 약화됩니다. 에덴에서 하와는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선악과)를 '하나님과 같아지기 위한 도구'로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대상화(objectification)의 시작이며, 현대 경제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원형을 보여 줍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욕망의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심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인간 욕망의 본질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Ⅲ.땅의 저주, 노동의 변화: 경제 생산 구조의 왜곡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타락 후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개역개정)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수고'는 히브리어 עִצָּבוֹן(itsabon, 이차본)으로, 고통과 애쓰음을 동반한 노동을 뜻합니다. 이전의 노동이 기쁨과 창조적 협력이었다면 이제 노동은 생존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월튼 (John Walton) 은 이 부분을 ‘임무의 변질’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노동 자체가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노동 환경과 노동의 목적이 변했다"고 해석합니다. 즉, 노동은 여전히 창조 목적 속에 있으나 인간이 경험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 역시 노동의 변화가 경제 구조의 불평등을 낳았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땅의 저주는 생산성의 불균형을 만들었고, 불균형은 인간 사회의 지배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합니다. 일부는 풍요를 누리고, 다른 이들은 고통을 겪게 되는 구조가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근대 경제철학에서 마르크스 (Karl Marx) 는 노동의 소외(alienation)를 지적했습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 결과물을 완전히 소유하지 못하고 자본에 종속되는 구조를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노동의 고통이 사회 구조적으로 확대된 현실을 설명하는 중요한 틀을 제공합니다.
대한민국에서도 노동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이슈입니다. 과도한 경쟁, 불안정하고 불공정한 노동 환경으로 나타나고 있고 그 결과 삶의 질은 점차 높은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 하나님 질서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성경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Ⅳ. 관계의 붕괴와 경제적 갈등의 시작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창세기 3장의 타락 이후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인간 관계의 파괴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비난하며 책임을 회피하였고(창 3:12) , 이는 공동체 신뢰의 붕괴를 상징합니다. 경제는 본질적으로 신뢰 위에서 작동하는데,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 질서는 붕괴됩니다.
신학자 테렌스 프레데헴(Terence Fretheim)은 이 장면을 가리켜 '관계 기반 경제의 해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성경에서 경제는 단순한 자원 교환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행위"라고 설명합니다.
관계의 붕괴는 곧 경쟁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서로를 믿을 수 없기에 더 빨리, 더 많이 확보하려는 충동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탐욕의 구조이며, 현대 사회의 과도한 경쟁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사회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 사회를 '액체 근대'로 정의하며 관계의 파편화를 지적했습니다. 그는 "경제적 불안정은 인간 관계의 불안을 강화하고, 불안정한 관계는 다시 경제를 위협하는 악순환을 형성한다"고 분석합니다. 이 구조는 창세기 3장에서 이미 시작된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OECD 국가 중에서도 경쟁 강도가 매우 높은 국가입니다. 교육, 취업,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보다는 대비와 경쟁이 강조됩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적 경제 질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을 돌아보는 신학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Ⅴ. 환경의 붕괴와 자연 질서의 혼돈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타락의 또 다른 결과는 자연 환경과 자연 질서의 붕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창 3:18). 여기서 '가시'는 히브리어 קֺוץ(qots, 콧츠)이며, '엉겅퀴'는 דַּרְדַּר(dardar, 다르다르)입니다. 두 단어 모두 자연의 적대성을 상징하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깨졌음을 보여 줍니다.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 은 이를 '창조의 관계적 조화의 균열'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돌보는 관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을 때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을 돕는 동반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대상이 된다"고 분석합니다.
월튼 (John Walton) 은 이 구절을 해석하며 "창조 세계는 인간의 순종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불순종은 자연 시스템 전반의 균열을 불러왔고, 이 균열은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로 이어졌습니다.
현대 경제 체제에서도 환경 파괴는 거대한 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 과소비, 자원 고갈, 기후 변화 등은 탐욕적 경제 구조가 자연을 어떻게 압박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와 도덕적 기준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환경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세먼지, 폭염·폭우·폭설등 기후 변화의 직접적 영향은 사회 전반의 경제 구조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환경 윤리가 시급한 과제입니다.
Ⅵ. 타락 이후 경제 질서의 회복을 향하여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창세기 3장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장면을 그리면서 동시에 인간 경제 질서의 왜곡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볼 때 과욕의 추구, 노동의 고통, 관계의 파괴, 자연의 저항은 오늘의 경제적 위기와 불안의 근원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과 월튼(John Walton) 의 해석은 이 모든 경제적 혼돈의 시작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신뢰 붕괴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인간의 경제는 과욕·경쟁·불안정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실 역시 이러한 구조 속에 있습니다. 과도한 경쟁, 노동의 불안정, 자원 불평등, 환경 위기 등은 인간의 과욕과 불신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들입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하나님 질서의 회복입니다.
건전한 경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태도 또한 바로 세워지는 과정이 함께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의 완전한 충만함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하나님 중심의 경제관, 즉 하나님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려는 권위의 전복 욕망, 인간이 스스로 세계의 주인이 되려는 마음에서 돌이켜서 바른 삶을 지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경제관은 탐욕보다 나눔을, 경쟁보다 관계를, 소유보다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경제 혼란 속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회복의 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성경에서의 부(富): 축복인가? 시험인가? (0) | 2025.11.17 |
|---|---|
|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하나님이 부를 창조하신 목적 — 창세기의 경제 원리 (0) | 2025.11.13 |
|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에 앞서서 돈(화폐)의 탄생 및 돈에 대한 철학자들과 종교들의 시각 (0) | 2025.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