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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에 앞서서 돈(화폐)의 탄생 및 돈에 대한 철학자들과 종교들의 시각

📑 목차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신뢰에서 태어난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돈은 '힘'이 되었고, '자유'를 너머 이제는  '존재의 가치'로 평가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 관념에 앞서서 돈(화폐)의 기원을 살펴보고, 철학자들과 종교들의 시선을 통해 ‘부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고 ‘신앙적 경제관’을 조명해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에 앞서서 돈(화폐)의 탄생 및 돈에 대한 철학자들과 종교들의 시각

    Ⅰ.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돈(화폐)의 기원 — 인간 사회의 약속에서 비롯된 신뢰의 상징

     경제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 『Debt: The First 5000 Years』)는 '돈은 거래의 편의를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든 '사회적 약속'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은(銀) 단위는 실물화폐가 아닌 '부채의 단위'로서 먼저 존재했습니다. 즉, 돈은 '신용(credit)'이라는 사회적 관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Money'라는 영어 단어는 라틴어 Moneta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로마의 여신 주노 모네타(Juno Moneta)의 신전에서 주조된 데서 기원합니다. 중국 한(漢)대(BC 2세기)의 문헌에서는 이미 '화폐(貨幣)'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화(貨)'는 재화, '폐(幣)'는 신뢰의 징표를 뜻했습니다.

     

    결국 돈은 인간 공동체가 서로의 가치를 믿고 교환하기 위한 신뢰의 제도적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이 신뢰의 상징은 자율적 가치체계로 변모하였습니다.

    마르크스(Karl Marx)는 『자본론』에서 '화폐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사물의 관계로 전도(顚倒)시키는 물신(物神, Fetish)'이라 규정했습니다. 즉,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화폐의 철학』(1900)에서 '돈은 가치의 순수한 형태로서, 인간의 내적 가치감각을 평면화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돈은 교환의 중립적 수단이지만, 그것이 모든 가치를 계량화하는 순간 인간의 '정신적 깊이(Seelentiefe)'가 약화됩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 Keynes)는 '화폐는 제도적 신뢰(institutional trust) 위에 세워진 사회적 약속'이라 정의하며,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신뢰의 붕괴(trust collapse)'로 보았습니다. 현대 금융 시스템 또한 인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며,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위기는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이처럼 돈은 도구인 동시에 관계의 언어입니다. 인간이 신뢰를 잃을 때 돈의 의미도 사라집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이 경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부동산 가격의 급등, 청년층의 ‘영끌 투자’, 그리고 돈이 인생의 목적처럼 여겨지는 현실은 돈의 본질적 의미를 잊은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은 본래 인간을 위한 도구였으나, 지금은 인간이 돈의 도구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Ⅱ.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철학이 말하는 돈 — 욕망인가, 도구인가

    동양 사상에서 공자(孔子, BC 551~479)는 『논어』 「이인(里仁)」에서 '부(富)와 귀(貴)는 사람이 원하는 바이나, 그 얻는 바가 도(道)에 합당치 않으면 취하지 않는다(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라 하였습니다. 이는 경제적 성공이 도덕적 정당성을 전제로 해야 함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맹자(孟子)는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無恆産而無恆心)고 말하며, 경제적 안정이 도덕의 토대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사회경제학적으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현대 복지국가론에서 강조하는 '기본소득'의 철학적 근거 또한 '항산'의 개념과 통합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33장에 '知足者富(지족자부)'라 하여, 만족을 아는 자가 진정한 부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의 본질을 외적 축적이 아닌 내적 평화로 보았으며, 욕망의 절제가 곧 진정한 부라고 보았습니다.

     

    플라톤(Plato)은 『국가』에서 세 가지 영혼(이성·기개·욕망) 중 '욕망'이 지배할 때 사회가 타락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정치학』에서 '돈은 교환의 도구(chremata)로서 합리적 사용이 가능하나, 이자(usura)로 번식하는 순간 본질을 잃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그는 '자연적 경제'와 '비자연적 경제'를 구분하며, 후자를 탐욕의 산물로 규정했습니다.

     

    근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사람은 결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인간의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면서, 인간이 돈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역설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비판은 현대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서도 이어집니다. 인간은 이성적 경제인이 아니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안에서 돈을 판단하며, 종종 심리적 욕망과 비교우위의 압박에 의해 선택을 왜곡합니다.

    Ⅲ.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종교가 말하는 돈 — 죄인가, 축복인가

    유교의 사상가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부(富)는 도덕적 기초 위에 세워질 때 나라를 바로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돈을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이해하였고, 부는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윤리적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탐욕은 괴로움의 근원'이라고 설법하였습니다(『법구경』).

    그러나 동시에 '보시(布施)'의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부의 사용을 인정했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나누는 재물은 '공덕(功德)'이 되어 세상을 밝히는 힘이 됩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자유를 잃지 않는 지혜를 일깨워 줍니다.

     

    힌두교에서는 ‘락슈미(Lakshmi, 락슈미)’ 여신이 부와 번영의 상징으로 숭배됩니다.

    인도의 철학자 스와미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는 '돈은 신의 축복이며,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종교적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부는 업(業, Karma)의 결과이자 새로운 복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기적으로 사용될 때, 부는 곧 악업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슬람교에서는 돈을 '알라의 위탁물'로 이해합니다.

    꾸란은 '너희 재산은 알라가 너희에게 맡기신 것'(꾸란 57:7)이라 말씀합니다. 이슬람 학자 아부 하미드 알 가잘리(Al-Ghazali)는 '부는 신의 시험이며, 올바르게 사용할 때 구원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카트(Zakat)'제도는 이러한 신앙을 실천으로 나타낸 제도이며, 재산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은 의무로 여겨집니다.

     

    기독교에서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디모데전서 6:10, 개역개정)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돈 그 자체를 악이라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24, 개역개정)고 하셨습니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부는 인간 공동체의 돌봄을 위한 선물'이라고 해석합니다. 결국 돈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Ⅳ.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오늘의 대한민국 — 돈보다 귀한 마음의 부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의 이면에 깊은 불안과 피로를 안고 있습니다.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해하고, 관계는 점차 파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는 통장 잔고의 숫자가 아니라, 신뢰와 나눔 속에서 발견됩니다.

    브루그만은 ‘언약적 경제(covenantal economy)’ 개념을 제시하며, 진정한 경제는 경쟁이 아닌 ‘돌봄의 질서’라고 말했습니다. 경제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체계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관계의 구조여야 합니다.

    청년층의 주거난, 노년층의 빈곤, 과소비와 부채의 문제 등은 단순한 경제적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치관이 왜곡된 결과이며, 사회 윤리가 무너진 징후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의로운 분배’, 칸트가 강조한 ‘인간의 존엄’이 회복될 때 비로소 돈은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돈은 결국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신앙의 방향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돈의 주인이 됩니다.

    Ⅴ. 결론 — 돈을 벌기 전에, 마음의 부부터 채워라

    돈은 인간의 자유를 넓혀 줄 수도 있고, 반대로 속박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주체는 돈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우리가 돈을 다루는 태도는 곧 우리의 철학과 신앙을 드러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21, 개역개정). 부의 문제는 결국 마음의 문제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감사와 나눔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돈을 위해 사는가, 아니면 돈으로 누군가를 살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