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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하나님이 부를 창조하신 목적 — 창세기의 경제 원리

📑 목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창세기 속에는 하나님의 경제 질서가 담겨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중심으로  'טוֹב (tov / 토브)의 선함', 'אֲדָמָה (adamah / 아다마)의 돌봄',  'שַׁבָּת (shabbat / 샤밧)의 쉼'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단순한 부가 아닌 관계적 풍요를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중 창세기의 경제 원리를 통해 하나님이 설계하신 부의 목적을 되새겨보고, 대한민국 사회 속에  적용해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하나님이 부를 창조하신 목적 — 창세기의 경제 원리

     

    Ⅰ.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서론 — 부(富)는 죄가 아닌 ‘창조 질서’의 일부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개역개정).
    이 한 구절은 모든 존재의 시작과 동시에, 풍요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창조하다’는 히브리어 בָּרָא (bara / 바라) 로,
    이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창조 행위, 즉 '무(無)로부터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세상을 만들어내신 것이 아니라, 생명과 관계, 그리고 풍요의 구조를 세우셨습니다.

    세계적인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창세기의 신학(Theology of the Old Testament)』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결핍의 세계가 아니라 관계적 풍요(relational abundance)의 세계다.'
    그에게 ‘풍요’란 단순한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간의 관계적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적 경제 질서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난에 눌려 사는 존재가 아니라,
    풍요 속에서 감사하며 관계를 세우는 존재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부 자체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조 질서의 한 부분입니다.
    문제는 '부'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 할 때 생깁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부와 성공은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의도하신 부는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관계’의 결실입니다.
    그분의 창조는 살림의 구조, 즉 함께 살게 하는 질서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의 목적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경제는 창조의 본래 목적과 맞닿게 됩니다.


    Ⅱ.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본론 1 — “טוֹב (tov / 토브)”의 경제학: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은 반복적으로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10, 개역개정).
    여기서 '좋다'는 히브리어 טוֹב (tov / 토브) 로,
    단순한 미적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맞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경제'란 모두가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공평한 구조입니다.

    '토브'는 단순한 'good'이 아닙니다.
    그 의미에는 균형, 조화, 생명 유지라는 깊은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물질을 축적하기보다,
    그 물질이 공동체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경제의 ‘좋음’은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관계적 완성도의 문제입니다.

    존 월턴(John H. Walton) 교수는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of Genesis One)』에서
    창세기의 창조는 물질적 창조가 아니라 기능적 창조(functional creation) 라고 주장합니다.
    즉, 하나님은 존재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역할과 의미, 그리고 관계를 부여하셨다는 것입니다.
    '토브'한 세계는 바로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의 조화를 말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경제 윤리와도 연결됩니다 — 공정, 투명성, 지속가능성.

    오늘의 한국 사회는 불평등과 경쟁으로 인한 불안이 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토브' 경제는 모두가 생명을 누리는 질서,
    즉 '공정한 분배'와 '관계적 풍요'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은 '승자 독식'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질서'입니다.

    '토브'의 경제를 회복한다는 것은,
    이윤의 크기가 아니라 나눔의 깊이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부는 하나님의 질서 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Ⅲ.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본론 2 — “אָדָם (adam / 아다므)”과 “אֲדָמָה (adamah / 아다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세기 2:7, 개역개정).
    '사람'은 히브리어 אָדָם (adam / 아다므) 이고, '흙'은 אֲדָמָה (adamah / 아다마) 입니다.
    두 단어는 어근이 동일합니다.
    즉, 인간은 땅으로부터 왔고, 땅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경제 활동이 '땅'의 질서 안에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소유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땅을 경작하며 지키라'(창세기 2:15, 개역개정) 하셨습니다.
    여기서 '지키다'는 שָׁמַר (shamar / 샤마르) 로,
    '돌보다', '보호하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인간은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탁을 받은 청지기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이것을 '청지기적 상호의존(shalom of interdependence)'이라 표현합니다.
    인간의 경제는 땅과의 상호 돌봄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경제 구조는 ‘아다마’를 수탈의 대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토지 투기, 환경 파괴, 자원 고갈은 창조 질서의 파괴입니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과열 현상은 현대판 '아담의 타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다마'를 지배하려는 욕망은 결국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난 경제를 만듭니다.
    성경적 경제관은 소유보다 돌봄,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시합니다.
    하나님의 부는 '갖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힘입니다.


     

    Ⅳ.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본론 3 — “שַׁבָּת (shabbat / 샤밧)”의 원리와 경제적 리듬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니'(창세기 2:3, 개역개정).
    여기서 '안식하다'는 히브리어 שַׁבָּת (shabbat / 샤밧) 으로,
    '멈추다', '쉬다'를 뜻합니다.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리듬에 동참하는 시간입니다.
    즉,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의 순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복의 시간입니다.

    '샤밧'은 인간의 노동이 '자족'과 '감사'로 완성되도록 합니다.
    이는 생산 중심의 경제로부터 관계 중심의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쉼을 통해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께 의존함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참된 경제의 균형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는 쉼 없이 돌아가는 경쟁의 체계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샤밧'은 멈춤 속의 회복, 쉼 속의 부요함을 가르칩니다.
    기업의 ESG경영,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같은 개념들도
    결국 창조 질서의 리듬과 맞닿아 있습니다.

    브루그만은 말합니다.

    '샤밧은 경제적 저항의 행위이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세상에 맞서 멈춤을 선택하는 믿음의 선언이다.'
    이 선언이야말로 하나님의 경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경제는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의로운 순환'입니다.
    그 속에서만 인간의 노동과 부가 참된 의미를 갖습니다.


    Ⅴ.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결론 — 하나님의 경제는  '풍요와 정의'이다

    창세기가 말하는 하나님의 경제는 풍요와 정의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부를 누리되, 그 부가 타인과 피조세계를 살리는 방향으로 흐르길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개역개정).

    하나님은 인간이 단순히 번영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리는 존재가 되길 바라십니다.
    그분이 창조하신 부의 질서는 공유와 돌봄, 감사의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무너질 때, 부는 탐욕이 되고 경제는 우상이 됩니다.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창세기의 원리를 되새겨야 합니다.
    '토브'의 선함, '아다마'의 돌봄, '샤밧'의 쉼을 회복하는 것 —
    그것이 곧 신앙의 경제 개혁입니다.
    하나님의 경제는 사람을 살리는 부, 관계를 세우는 돈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부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함께 살아가는 풍요의 질서” 속에 머물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 부가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은 다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