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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부(재정)의 신학적 조명 : 창세기–지혜문학–바울서신의 관점에서

📑 목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중 노동과 부(재정)의 신학적 조명을 창세기 2장(창조 질서의 노동), 창세기 3장(노동의 훼손과 고통), 잠언 14장(지혜문학의 노동·부 원리), 바울신학(데살로니가후서 3장, 골로새서 3장,고린공동체적 노동 윤리)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어·헬라어 원어성경과 학자들의 견해를 통해서 살펴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노동과 부(재정)의 신학적 조명 : 창세기–지혜문학–바울서신의 관점에서

    1. 서론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활동을 넘어 정체성, 존엄, 미래의 안전과 직결되는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과 효율 중심으로 구조화된 현대 경제는 노동의 본래적 의미를 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성경은 일과 노동을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인간 창조 목적에 깊이 뿌리내린 소명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창세기와 지혜문학, 바울 서신은 노동의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며, 책임 있는 경제생활과 부의 형성 방식에 대한 윤리적 지침을 제시합니다.


    본 글에서는 고대 근동 문맥과 함께 성경이 가르치는 노동과 부의 윤리를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토대로 현대 사회의 변화된 노동의 현실 속에서 노동과 부의 건강한 방향성을 찾고자 합니다.

    2. 노동의 기원 : 창조 질서 속의  노동

    창세기 1–2장은 인간의 노동을 인간 존재의 부차적 활동이 아니라, 창조 세계의 구조 속에 내재된 기본적 기능으로 제시합니다. 특히 창세기 2장 15절은 인간의 역할을 에덴 정원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노동이 창조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임을 드러냅니다.

     

    창세기 2장 15절(새번역):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곳을 일구며 돌보게 하셨습니다."

     

    위의 성경 구절 창세기 2장 15절에 사용된 두 개의 핵심 동사는 '일구다'와 '돌보다' 입니다. 그런데 '일구다'와 '돌보다'는 단순한 직무나 활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구다'의 히브리어 עָבַד (abad, 아바드)봉사하다, 경작하다, 예배하다라는 의미의 폭넓은 개념을 지니며, 노동을 예배적 차원까지 확장합니다. 이 단어는 농경적 의미를 넘어서, 이스라엘의 종교 언어에서 제의적 봉사, 성막에서의 섬김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노동이 단순한 경제적 기능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제의적 참여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지키다'의 히브리어 שָׁמַר (shamar, 샤마르)는 보존하고 돌보고 책임지는 행위를 뜻합니다. 법을 지키다, 말씀을 준수하다, 언약을 보존하다 등 '언약적 책임성(covenantal stewardship)'을 나타내는 단어로 자주 쓰입니다. 에덴을 '지키다”라는 명령은 인간이 단순히 자연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 아니라, 언약적 공간을 보전하는 성소적 수호자임을 시사합니다.

     

    이스라엘 고대 성소 연구자들 가운데 많은 학자들은 에덴을 단순한 동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성소적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세계적 구약학자 존 월튼(John H. Walton)은 ‘The Lost World of Adam and Eve(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에서

    창세기 2장의 직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아바드와 샤마르의 조합은 성막 제사장에게 주어진 역할과 동일한 언어로 표현되며, 이는 인간이 창조 직후부터 하나님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사장적 존재로 자리매김되었음을 보여 준다.”

     

    즉, 노동은
    경작 행위와 동시에
    성소 봉사이며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 가운데 구현하는 '제사장적 소명(priestly vocation)'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노동을 ‘먹기 위한 수단’ 또는 ‘경제 활동의 일부’로 환원시킨 현대적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학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창세기와 다르게 고대 근동의 여러 창조 신화(예: 메소포타미아의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인간이 신들의 노동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창조된 존재로 묘사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관점과 구별되게, 노동을 신적 부담 해소가 아닌 창조 세계의 회복과 질서 유지에 동참하는 적극적 참여로 제시합니다.

     

    구약신학자 브루스 월트키(Bruce K. Waltke)는 그의 저서 ‘Old Testament Theology(구약신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의 노동관은 인간을 저급한 노동자로 이해했던 고대 근동 문화와 달리, 노동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닮는 행위로 소개한다.”

    이 관점은 노동을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된 활동으로 격상시킵니다.

     

    여기서 월트키가 인간의 노동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닮은 행위라고 하는 말의 뜻은 바로 인간을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대리적 존재(vice-regent)'로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대리적 존재로서 인간은 노동, 관계, 문화 형성, 윤리적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사합니다.   

      

    특히 노동에 관한 부분에서 그는 다음을 강조합니다.

    "구약에서 노동은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에게 맡기신 통치 행위이며, 이는 죄 이전부터 존재한 신성한 소명이다

    즉, 노동은 저주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적 사명입니다.

     

     존 월튼(John H. Walton)역시  자신의 저서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NIV 적용 주석 : 창세기)’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노동은 단순한 생계유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세상 가운데 구현하는 성전적 책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노동이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권 위임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3. 노동의 훼손 : 왜곡과 인간의 고통

    창세기 3장에서 남자와 여자의 불순종 이후 인간의 노동은 창조 질서 속에서 본래 부여된 존엄성(dignity)과 예배성(worshipful character)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피로·갈등·비효율·불안정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개입한 영역이 됩니다. 노동의 과정과 환경, 그리고 그 결과를 얻기까지의 구조가 깨졌음을 강조합니다.

     

    창세기 3장 17절(새번역)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히브리어 원문의 흐름을 보면, '수고하다'는 동사에 해당하는 표현은 ' עִצָּבוֹן( iṣṣāḇōn, 이츠사본)’으로, 단순한 육체적 힘듦보다 고통이 동반된 고된 수고, 즉 정서적·심리적 압박까지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즉, 노동 그 자체보다 노동을 감당하는 인간의 존재 전체가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게르하르트 폰 라드(Gerhard von Rad)는 ‘Genesis: A Commentary(창세기 주석)’에서 “고통이 노동의 본질이 된 것이 아니라 노동의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왜곡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노동 그 자체가 저주가 아니라 노동 환경과 구조가 훼손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동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활동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에게 위임하신 창조 질서의 일부이며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신성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노동의 환경과 조건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노동의 환경이 되었던 땅 אֲדָמָה (ădāmâ, 아다마) 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땅이 저주받았다는 것은 자연의 생산성이 낮아지고, 인간의 통제력이 줄어들며,무질서가 증가하여 노력 대비 결과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노동-결과의 균형이 깨진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일)은 여전히 거룩한 가치이나, 노동의 열매가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인간은 노력에 비해 불충분한 결과를 얻습니다.

     

    단순히 땅의 물리적 저주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 안·경쟁·탐욕·게으름·두려움,일 중독 혹은 일 회피,직업을 통한 자기 우상화가 형성되면서 인간의 마음이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질됩니다.

     

    사회적 구조에도 권력·자본의 집중,부의 구조적 편향,빈부격차의 확대,노동의 위험을 특정 집단이 떠맡는 구조로 왜곡 되면서 동일한 노동에도 노동의 열매는 종종 불평등하게 분배됩니다.

     

    브루그만은 『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구약신학 개론)』에서  "타락은 인간이 하나님의 선한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을 약화시키며, 노동은 생명유지의 도구에서 생존투쟁의 장으로 변한다." 고 하였습니다.

    노동이 생명 창조와 번영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으나 이제 노동이 불안과 결핍의 근원이 되었다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창세기 주석에서 "타락 이후 노동은 하나님의 복의 주기적 공급이 약화되고, 노동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세계를 의미한다”고 분석합니다. 

    즉, 일의 결과가 줄어드는 경험은 인간 탓이 아니라, 타락한 세계의 보편적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4.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 : 지혜문학과 바울서신

    성경은 타락한 사회 구조 속에서도 노동의 거룩성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잠언은 성실한 노동과 게으름의 대조를 통해 지혜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잠언 14장 23절(새번역):
    "모든 수고에는 이득이 있는 법이지만, 말이 많으면 가난해질 뿐이다."

    수고는 히브리어 ‘ עָמָל (amal, 아말)’은 힘겨운 노동을 의미하나, 성경은 이 수고 속에서도 가치와 열매가 존재함을 확인합니다. ‘아말’은 경제적 이득 이상의 인격적 성숙의 과정으로

     단순히 힘든 노동을 뜻하는 것(“수고하다, 고통을 겪다”)을 넘어서, 지혜문학 전체에서 인간 삶의 실존적 긴장과 깊은 고뇌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잠언 14장 23절(새번역):
    "모든 수고에는 이득이 있는 법이지만, 말이 많으면 가난해질 뿐이다."

    이 본문은 단순히 게으름과 수고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 지혜문학에서

    • 말만 하는 사람(דְּבָרִים רַבִּים, ‘말이 많은 자’)은
      현실을 회피하고 책임을 미루는 자를 상징합니다.
    • 반면 수고하는 사람은
      공동체적 기여와 자기 책임을 중심에 둔 지혜로운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말은 많지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고대 사회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했고 경제적 기반도 잃었습니다.

     

    또한, 히브리어 '아말’은 노동과 고통이 결합된 신학적 용어 입니다. 

    • 육체적 수고
    • 심리적 번민
    •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투쟁
    • 인간의 연약함과 시간성
      등을 함께 내포합니다.

    특히 시편과 잠언에서 ‘아말’은 인간이 죄의 영향 아래 놓인 세상에서 경험하는 노동의 실존적 무게를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시편 90편 10절(새번역)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아말’은 단순히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인간이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몫의 역할을 감당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합니다.

     

    히브리 사상에서 노동은
    단지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능적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아말’은 인간의 내면을

    • 절제
    • 성실
    • 인내
    • 책임감
      과 같은 '덕목(virtues)'으로 빚어내는 과정입니다.

    고대 지혜문학은 이를 통해
    노동은 인간이 하나님 형상(Imago Dei)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가르칩니다.

    잠언 14장 23절 “모든 수고에는 이득이 있는 법이지만”에서 '이득'은 히브리어 ‘מוֹתָר (모타르, 뜻: 이득)’는
    단순한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삶의 질서, 인격의 성장,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총체적 유익을 의미합니다.

     

    요약하면,

    잠언 14장 23절은 노동을 단지

    • 성공을 위한 전략
    • 가난을 피하는 수단
      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락한 세상 속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의식하며 책임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신앙의 실천으로 제시합니다.

    ‘아말’은 고통을 포함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배우고, 세상을 섬기고, 자기 자신을 형성합니다.

    결국 이 구절은
    노동을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신앙적 여정으로 해석하도록 이끕니다.

     

    신약성서에서 바울은 고린도와 데살로니가 공동체를 대상으로 노동의 윤리를 더욱 분명히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새번역)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하고 거듭 명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부 신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잘못된 기대 때문에 노동을 중단하거나 무책임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태도가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다른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며, 외부인에게 복음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보았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노동을 경건의 한 형태로 이해했습니다. 랍비 전통에서도 “일하지 않는 자는 도둑질하는 자와 같다”는 격언이 전해지며, 노동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을 드러내는 수단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교훈은 단순한 경제적 강요가 아니라
    공동체의 거룩성과 질서를 지키는 신학적 규율입니다.

     

    바울의 진의는 "게으른 사람을 배제하라"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 무임승차적 신앙을 허용하지 말라"는 원리였습니다.
    노동은 공동체적 사랑의 실천이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참여 행위였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3장 23절(새번역)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여기에서 '진심으로 하십시오'라는 표현은 헬라어 'ἐκ ψυχῆς (ek psychēs, 에크 푸케스)'로

    직역하면 “영혼으로부터, 존재 전체로부터”라는 뜻인데 전인적 헌신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노동을 단순한 기능적 의무가 아니라 전 존재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신앙적 행위로 이해했습니다.
    즉,
    노동 =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 λατρεία(latreia, 라트레이아)의 확장 입니다.

     

    헬라-로마 시대의 노동은 계층에 따라 크게 구분되었습니다.

    • 철학자나 귀족계층의 이상적 삶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 수공업과 육체 노동은 ‘하급’ 계급의 일로 간주

    이런 사회에서 바울은
    모든 노동에 동일한 신적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이는 당시 고대 도시 노동 환경에서의 혁명적 메시지였습니다. 사회 윤리에 대한 급진적 재정의였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3장 23절(새번역)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주님께 하듯이”(ὡς τῷ κυρίῳ)라는 표현은
    노동의 기준이

    • 상사가 누구인지
    • 사회적 지위가 어떤지
    • 경제적 보상이 얼마인지
      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노동의 가치는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정해진다는 뜻으로 직업의 위계를 철폐하는 기독론적 선언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비량 사역을 통해서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서 '천막 제조업 σκηνοποιός (skēnopoios, 스케노포이오스)'이라는 실제 노동을 하며 자신이 가르치는 윤리를 몸소 실천했습니다(사도행전 18:3).

     

    그는 이를 통해 세 가지 신학적 메시지를 제시했습니다.

          -복음 전파는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공동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자족의 삶

          -노동이 복음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도록 하는 배려
            (고린도전서 9장 전체)

     

    즉,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도의 정체성과 복음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요약하면,

    바울의 노동 윤리에서 발견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노동의 본질적 가치는 임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
    2. 게으름과 무책임함은 공동체 전체를 해친다
    3. 직업의 종류·지위·급여와 상관없이 모든 일은 동일한 신학적 가치를 지닌다
    4. 노동은 공동체적 사랑을 실천하는 자리이다
    5. 그리스도인은 노동을 통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드러낸다

    한국 사회의 경쟁적 구조 속에서 노동의 본질적 목적을 상실하기 쉬운 현실에 대해, 바울의 가르침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귀하게 세우는 대안적 가치 체계를 제시합니다.

    5. 노동과 부(재정)의 신학적 조명 : 창세기–지혜문학–바울서신의 관점에서

    노동과 재정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라’, ‘부를 잘 관리하라’의 수준을 넘어, 하나님이 세상을 어떤 질서로 창조하셨고, 인간이 그 질서 안에서 어떤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드러냅니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의 흐름을 창세기–지혜문학–바울서신이라는 선상에서 통합해 보면, 노동과 부는 다음과 같은 건강한 방향성을 갖습니다.

    1)노동은 정체성이다: 창조 질서에 기반한 ‘소명적 노동’

     창세기 2장에서  노동은 삶의 본질 입니다. 

    히브리어 ‘ עָבַד (아바드, 뜻: 일구다)’는 경작·봉사·예배를 모두 내포하며,
    인간은 하나님의 세계를 돌보는 사제적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의 표현이며, 하나님 형상의 구현입니다.

    따라서, 직업의 귀천이 아니라 태도와 의미가 중요합니다.

    신자는 자신의 직업을 통해 “세상 한복판에서 예배한다”는 소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2)노동의 고통은 존재론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 회피가 아니라 ‘개혁’이 필요

     창세기 3장에서 노동의 훼손으로 찾아온 고통은

    게르하르트 폰 라드가 말하듯, 노동 환경·관계·결과의 왜곡입니다.

    오늘의 스트레스·비효율·불평등·과로 문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훼손된 질서의 반영입니다.

    따라서, 노동을 포기하거나 회피하기보다
    건강한 구조와 공동선(共通善)을 회복하려는 개혁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과로·착취·불평등을 당연시하지 말고,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신앙적 참여입니다.

     

    3)지혜는 노동을 ‘열매 맺는 방향’으로 조정한다

    잠언은 노동의 고단함 히브리어 עָמָל(아말,뜻: 수고)을 인정하면서도,
    지혜로운 행위 속에서 히브리어 מוֹתָר(모타르, 뜻: 열매, 가치)’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부(wealth)는 단순히 열심히 일한 대가가 아니라
    지혜와 성실, 절제, 관계, 정의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감정적 소비보다 지혜로운 재정 습관을 형성하여야 합니다.

    단기적 이득보다 장기적 성장·지속성을 지향해야 합니다.

    유혹(불성실, 편법, 탐욕)을 이기는 힘이 ‘지혜’입니다.

     

    4)바울: 노동은 공동체적 책임과 사랑의 실천

    노동은 공동체의 유익을 만드는 책임 윤리입니다(데살로니가후서 3:10).

    전인적 헌신으로 일함은
    직업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봉사 행위로 전환시킵니다(골로새서 3:23).

    노동은 개인의 생계를 넘어서
    공동체를 세우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노동은 '우리의 번영'을 향해야 한다.

    재정도 개인을 위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나눔과 선행의 통로도 되어야 합니다.

     

     

    5)현대인을 위한 최종 제언

    -노동의 목적을 재정립하라

           '생계'가 아니라 '부름받음'으로 이해할 때 삶의 방향이 바뀝니다.

    -번아웃과 무의미를 극복하려면 ‘창조적 정체성’을 회복하라

            노동은 하나님 형상의 실현입니다.

    -경제적 성공을 우상화하지 말라

            참된 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질적 풍성함이며, 단순히 수치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재정을 도구로 보라

            재정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을 확장하는 도구입니다.

    -공동선(共通善)을 지향하라

            정직과 공정, 배려와 나눔이 성경적 노동·재정 윤리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