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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경제 정책의 한계

📑 목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경제 정책의 한계 솔로몬 시대의 경제 상황을 성경 본문과 신학자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성전 건축과 조세 제도 및 국제 무역 그리고 국가 재정 구조를 통해 본 솔로몬의 경제 정책과 그 신학적 의미를 알아봅니다. 솔로몬 왕의 번영과 번영이면의 한계도 조명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경제 정책의 한계

     

    솔로몬 왕의 통치는 성경이 묘사하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풍요로운 시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 시대는 정치적 안정과 국제 무역의 확장 및 대규모 건축 사업이 동시에 이루어진 시기였기 때문에 경제적 번영은 단순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경제 구조를 통해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찬란했던 번영만을 기록하지 않고 한계까지 드러내어 말해줍니다.

    1. 솔로몬 시대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 성장의 토대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경제 정책의 한계 열왕기상 4장 24절에는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 이쪽에 있는 모든 지역 곧 딥사에서부터 가사에 이르기까지,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모든 왕을 다스리며, 주위의 모든 민족과 평화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의 일생 동안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이 구절을 통해 솔로몬왕이 다스리고 있었던 시대적 분위기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왕기상 4장 24절은 솔로몬 시대의 국제 질서를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쪽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과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지역을 다스렸다."라고 요약합니다. 솔로몬 시대가 전쟁이 아닌 평화와 안정에 기초한 활발한 경제 성장기였음을 보여 줍니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었기에 이스라엘은 전쟁이 아닌 건축과 무역 및 행정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고대 근동 사회에서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으며, 경제 발전의 핵심 조건이었습니다. 신학자 존 브라이트(John Bright)는 자신의 저서『A History of Israel』에서 솔로몬 시대를 '이스라엘이 고대 근동의 국제 경제 질서 속으로 본격 편입된 시기'로 평가하며, 정치적 안정이 경제적 번영의 직접적인 전제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2. 솔로몬 시대의 경제구조를 위한 행정 조직과 조세 기반의 확립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경제 정책의 한계 솔로몬 시대의 경제에 있어서 부와 번영이 왕실의 사치나 우연한 축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의 경제는 국가 행정에 의해 조직된 재정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체계적인 중앙집권적 경제 구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행정적 기반을 단편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와 숫자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4장 7절에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 지역에다가, 관리를 지휘하는 장관 열둘을 두었는데, 그들은 각각 한 사람이 한 해에 한 달씩, 왕과 왕실에서 쓸 먹거리를 대는 책임을 졌다."(새번역)라고 기록하는데 이것은 솔로몬 시대 재정 운영의 핵심 구조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전국을 열두 행정 구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 총독을 임명하여 왕실 재정을 분담하게 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단순한 세금 징수가 아니라, 국가가 행정 단위별로 책임을 분산시키는 체계적인 구조였습니다. 각 지방은 일 년 중 한 달 동안 왕실과 중앙 행정의 유지 비용을 부담하였고, 이를 통해 왕실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재정 흐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러한 부담은 מַס(mas, 마스)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מַס(mas, 마스)는 강제적 착취보다는 국가가 공공 질서와 행정을 유지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요구하는 공적 부담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솔로몬의 조세 제도는 즉흥적인 수탈이나 임의적인 징발이 아니라, 행정 구획과 시간표에 따라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재정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솔로몬 시대의 경제가 개인 통치자의 재량에 의존하지 않고 제도화된 행정 조직에 기반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같은 행정 조직은 솔로몬 왕국의 번영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소였습니다. 왕실은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여서 성전 건축과 궁전 건설 및 외교 사절 접대 그리고 국제 무역 관리 등 다양한 국가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성전 중심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식량과 자원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했는데, 열두 지방 총독 제도는 이를 가능하게 한 현실적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자신의 저서 『1 Kings』 주석에서 이 행정 구조를 '중앙 집권적 왕권이 작동하기 위한 필연적 경제 장치'로 평가하면서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긴장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이 제도가 단기적으로 국가적 안정과 번영을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는 지방 백성들에게 점점 무거운 부담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어필합니다. 솔로몬 시대 말기와 그 이후에 백성의 불만은 이러한 조세 구조가 누적되면서 사회적 긴장을 형성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열왕기상 12장 4절에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셨습니다. 이제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워 주신 중노동과 그가 우리에게 메워 주신 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새번역)라고 기록한 내용을 보면 르호보암 왕에게 백성들이 요구하는 무거운 멍에는 이미 솔로몬 시대에 구축된 중앙집권적 재정 체제를 가리키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왕 시대의 제도 자체가 악했다라고 보기 보다는 국가의 번영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가 백성의 삶과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초래된 결과를 보여줍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은 솔로몬 시대의 경제를 '성공적이지만 취약한 체계'로 규정합니다. 다시 말해 행정과 조세가 왕권 강화와 국가 사업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정의와 공평이라는 신학적 기준과 지속적으로 조율되지 않을 경우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 시대의 행정 조직과 조세 기반은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부족 연합 수준의 경제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조직된 재정과 행정을 운영하는 사회로 진입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발전이 자동적으로 신앙적 성숙이나 공동체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솔로몬의 경제는 번영의 가능성과 함께, 그 번영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오늘의 독자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3. 솔로몬 시대의 핵심 경제 성전 건축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경제 정책의 한계 솔로몬 시대 경제의 핵심은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성전은 단순한 종교 건물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경제 역량을 상징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를 위해 솔로몬은 대규모 노동력과 자원을 동원하였음을 열왕기상 5장 13절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5장 13절에는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전국에서 노무자를 불러 모았는데, 그 수는 삼만 명이나 되었다."(새번역)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무자’는 앞서서  '2. 행정 조직과 경제구조를 위한 조세 기반의 확립' 의 두 번째 단락에서 언급한 마스(mas) 제도에 따른 동원 인력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대규모 사업은 솔로몬 개인의 재능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다윗왕 시대부터 축적된 재정과 외교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신학자 리처드 넬슨(Richard D. Nelson)은 자신의 저서 『First and Second Kings』에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단순한 종교 건축 사업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경제가 구조적으로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성전 건축은 신앙적 열심의 결과이기 이전에,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보여 주는 종합적 지표였다고 분석합니다. 넬슨은 먼저 성전 건축의 규모와 지속 기간에 주목합니다. 열왕기상 6장 38절에 "성전이 그 세밀한 부분까지 설계한 대로 완공된 것은 제 십일년 월 곧 여덟째 달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일곱 해가 걸렸다."(새번역)라고 언급한 것처럼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일곱 해가 걸렸다고 합니다. 일곱 해 동안의 성전 건축은 단발적인 재정 지출이 아니라 장기간 안정적인 재정 수입과 행정 관리 능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업이었습니다. 넬슨은 성전 건축 기간 동안 국가 경제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솔로몬 시대의 재정 구조가 일시적 호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또한 그는 성전 건축에 사용된 자원의 성격을 중요하게 분석합니다. 성전에는 금, 은, 백향목, 다듬은 돌과 같은 고급 자원이 대량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물자가 풍부했다는 의미를 넘어, 국가가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통제력과 행정적 선택권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로 봅니다. 넬슨은 이러한 자원 집중은 솔로몬 왕권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정점에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넬슨은 성전 건축이 국제 무역과 외교 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두로 왕 히람과의 협력, 해상 무역을 통한 금 확보, 외국 기술자의 참여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고립된 사회가 아니라, 고대 근동의 국제 경제 질서 속에 깊이 편입된 국가였음을 보여 준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은 국제적 경제 네트워크가 만들어 낸 가시적 결과물이었으며 경제력의 정점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기능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넬슨의 해석은 찬양에 머물지 않습니다. 성전 건축이 경제력의 절정을 보여 주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동일한 수준의 확장이 지속되기 어려웠다는 점에도 주목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전 건축은 상승 곡선의 정점이자 전환점에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성전은 번영의 완성인 동시에, 이후에 나타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긴장의 전조로 해석됩니다.

     

    넬슨은 결국 솔로몬의 성전을 '이스라엘 경제가 신앙과 정치 및 행정 그리고 국제 무역이라는 모든 요소를 총동원하여 도달한 최대치의 표현'으로 규정합니다. 성전은 제사의 공간 즉 예배의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국가 경제가 감당할 수 있었던 가장 크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공공 사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성전 건축은 솔로몬 개인의 신앙심만을 증명하는 사건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 경제가 어떤 단계에 도달했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역사적 증거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넬슨은 해석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성경이 성전 건축을 단순한 신앙적 사건으로만 기록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자원과 노동기간 및 외교 관계를 언급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결론적으로 성전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이스라엘의 경제 현실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지표였다는 점에서 솔로몬 시대 경제를 이해하는 핵심적 열쇠가 된다고 넬슨은 말합니다. 

    4. 솔로몬 시대 부의 축적을 가져온 교역 경제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경제 정책의 한계 이스라엘은  주로 농업과 지역 교역에 의존하던 사회였으나, 솔로몬 통치기에 이르러 해상 무역과 장거리 교역망에 참여하면서 국가 경제의 성격 자체가 질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부의 증가를 넘어, 이스라엘이 고대 근동의 세계 경제 질서 속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열왕기상 9장 28절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사백이십 달란트의 금을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 왔다."(새번역)라는 기록을 통해서 솔로몬 시대 경제의 또 다른 특징으로 국제 무역이 활성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해상 무역은 국가 재정에 막대한 수입을 가져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금의 양은 고대 세계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솔로몬은 해상 무역의 경험과 기술이 부족했던 이스라엘의 한계를 인식하고, 두로 왕 히람과의 동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두로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발달한 해상 교역 국가였으며, 숙련된 선원과 항해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9장 27절 "히람은 자기 신하 가운데서 바다를 잘 아는 뱃사람들을 보내서, 솔로몬의 신하들을 돕게 하였다."(새번역)라는 기록은  무역이 국제 협력에 기초한 경제 활동이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러한 해상 무역은 이스라엘 경제를 자급자족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외부 자원과 시장에 의존하는 교역 경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금뿐 아니라 목재와 보석 및 향료와 같은 고급 자원들은 성전 건축과 왕실 운영 및 외교 선물 등에 사용되었으며, 이는 솔로몬 왕국의 위상과 권위를 국제적으로 과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신학자 크리스토퍼 J. H.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는 그의 저서 『Old Testament Ethics for the People of God』에서 솔로몬 시대를 '이스라엘이 세계 경제 속에서 윤리적 시험대에 오른 시기'로 평가합니다. 부의 증가는 곧 신앙의 성숙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책임의 무게를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외부 자원과 외부 시장에 의존하는 교역경제 즉 국제적 교역으로 인한 부의 증가 이면에는 번영의 그늘과 경제 구조의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지만 반복적으로 강조해서 말하면 열왕기상 12장 7절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임금님께서 이 백성의 종이 되셔서, 그들을 섬기려고 하시면, 또 그들이 요구한 것을 들어 주시겠다고 좋은 말로 대답해 주시면, 이 백성은 평생 임금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 (새번역)에서 드러난 북이스라엘의 반발은  솔로몬 시대에 누적된 경제적 부담이 백성에게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것은  번영이 구조적으로 공정하지 못할 경우,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킬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은 '성전 중심 경제가 백성의 삶과 균형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로 분석합니다.

    5. 솔로몬 경제의 신학적 의미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솔로몬 시대의 번영과 경제 정책의 한계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솔로몬의 시대는 분명 번영의 정점에 다달았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번영이 어떻게 유지되고 분배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부를 축복의 증거로만 보지 않고, 권력과 부 및 신앙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해석합니다. 솔로몬의 이러한 경제 상황은 복합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경제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와 교회에 메시지를 전합니다. 솔로몬 시대의 경제측면과 신앙적 측면을 통해 보았듯이 경제 성장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공동체는 분열될 수 있다는 것과  부의 크기보다는 그 부를 어떻게 관리하고 누구를 위해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