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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

📑 목차

    열왕기상의 솔로몬 경제 정책과 신명기 17장 왕권 규정을 비교 분석합니다. 솔로몬 통치 기간 중 번영의 정점에서 드러난 신앙과 경제의 긴장 속에서 성전 건축과  부의 축적 및 중앙집권 경제가 신명기에서 서술하고 있는 왕권 규정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신학적으로 조명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 솔로몬 왕이 통치했던 시기는 성경이 증언하는 가장 화려한 번영의 시기였습니다. 성전 건축과 국제 무역 및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로 인하여서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중요한 국가로 부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7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왕의 규정에서는 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경제적 욕망과 정치적 욕망이 신앙을 압도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은 신명기 왕의 규정에 부합하는 왕이었을까요? 성경은 솔로몬을 지혜로운 왕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그의 경제 정책이 신명기적 왕권 이상과 점점 긴장 관계에 놓였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1. 솔로몬 경제 정책과 충돌하는 신명기 왕권 규정의 핵심 정신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 신명기 17장 14절부터 20절은 고대 근동 사회의 왕권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우 독특한 왕권 규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게 될 상황을 미리 전제하면서도, 왕권의 확대나 강화가 아니라 오히려 의도적인 자기 제한(self-limitation)을 왕에게 요구합니다. 이것은 왕을 국가의 절대 주권자로 세우지 않고, 언약 공동체 안에 속한 한 구성원으로 규정하려는 신학적 의도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신명기 17장 16절, 17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이라 해도 군마를 많이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군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이집트로 보내서도 안 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는 당신들이 그 길로 되돌아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왕은 또 많은 아내를 둠으로써 그의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리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자기 것으로 은과 금을 너무 많이 모아서도 안 됩니다." (새번역) 여기서 세 가지 금지 조항으로 언급한 말과 아내 및 은과 금은 각각 군사력과 외교권력 및 경제력을 상징합니다.

    즉 신명기는 왕이 국가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권한은 인정하지만, 그 권한이 왕 개인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합니다. 왕권은 왕  자신을 보호하고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백성을 위해 봉사해야 할 직무였습니다. 특히 "은과 금을 너무 많이 모아서도 안 됩니다. "(새번역)는 규정은 왕의 경제 행위에 대한 명확한 윤리적 한계를 설정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모으다'로 번역된 동사는 יֶרְבֶּה(yarbeh, 야르베)로, 단순한 소유나 관리가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증식을 의미하거나 과잉 축적 혹은 끝없는 확대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필요를 넘어선 탐욕적 축적을 내포합니다. 왕이 부를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삼을 위험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명기적 왕권 규정에서 금하고 있는 것은 '부의 존재'가 아니라 부가 왕권의 정당성과 안전을 보장하는 근거로 전환되는 경우입니다. 왕은 재정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정은 언제나 공동체의 생존과 정의를 위한 수단이어야 했습니다. 부 자체가 왕을 지켜 주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그의 저서 『Deuteronomy』 주석에서 이 왕권 규정을 '왕권에 대한 급진적인 신학적 견제 장치'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이 본문이 왕을 율법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아래에 두는 구조를 분명히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고대 근동의 절대 군주들처럼 신적 권위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토라를 필사하여 평생 읽으며 스스로를 통제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신 17:18–19).

     

    따라서 신명기 왕권 규정의 핵심 정신은 분명합니다. 왕의 힘은 제한될수록 공동체는 안전해진다는 역설적 신앙 고백입니다. 왕이 스스로를 절제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공동체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왕의 규정은 솔로몬 시대의 경제적 번영과 그 이면에 숨은 긴장을 평가하는 중요한 신학적 기준점을 제공해줍니다.

    2. 신명기 규정을 이탈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번영을 이룬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왕권 규정이라는 신학적 기준에서 살펴볼 때, 이 번영은 점차 긴장과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솔로몬의 통치는 단순한 부유함을 넘어, 왕실 중심의 재정 구조와 국제 교역망을 기반으로 한 구조화된 경제 체제를 형성하였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신명기가 요구한 왕의 자기 절제 원리와 충돌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10장 14절은 솔로몬 경제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열왕기상 10장 14절은 "해마다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은, 그 무게가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다." (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이 구절이 주목받는 이유는 금의 '총량'보다도, '해마다'라는 반복성에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부가 전쟁의 전리품이나 일회성 조공이 아니라, 국제 무역이나 조세 및 조공 체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구조적 수입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솔로몬의 경제는 우연한 축적이 아니라, 왕실을 중심으로 조직된 체계적 자본 축적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신명기 17장 17절이 경고한 “은과 금을 너무 많이 모아서도 안 됩니다."라는 규정과 분명한 긴장 관계를 형성합니다. 신명기가 금하는 것은 단순한 부유함이 아니라, 왕이 부를 자신의 권력 안정과 통치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구조였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금과 은은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왕권의 위엄과 국제적 위상을 상징하는 지표로 기능하게 됩니다.

     

    특히 열왕기상 10장은 솔로몬의 부를 긍정적으로 찬양하지 않습니다. 금 방패나 상아 보좌 및 금잔 등 화려한 왕실 장치를 상세히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부가 왕실 내부로 집중되고 있음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이는 경제적 번영이 공동체 전체의 정의와 직결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서술 방식입니다. 리처드 넬슨(Richard D. Nelson)은 자신의 저서 『First and Second Kings』에서 이 현상을 '신명기적 이상과 현실 정치 사이의 불가피한 충돌'로 해석합니다. 그는 솔로몬의 경제 정책이 행정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이었으나, 신학적으로는 위험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넬슨에 따르면, 솔로몬은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경제력을 강화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왕 자신이 더 이상 율법에 의해 제한받는 존재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결국 솔로몬 경제의 핵심 문제는 부의 크기 그 자체가 아니라, 부가 왕권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왕은 더 이상 공동체를 섬기는 청지기가 아니라, 경제 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수혜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왕권 규정이 의도했던 '제한된 왕권'의 이상과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며, 이후 열왕기상 12장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불만과 왕국 분열의 배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신학적 단서가 됩니다.

    3. 솔로몬 경제 정책 속에서 바뀐 신뢰의 대상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 신명기 17장은 왕이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을 명령하며, 특히 이집트와의 군사적이고 경제적인 의존을 경계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은 솔로몬이 말과 병거를 대규모로 확보하였음을 기록합니다. 열왕기상 10장 26절에는 "솔로몬이 병거와 기병을 모으니, 병거가 천사백 대, 기병이 만 이천 명에 이르렀다. 솔로몬은 그들을, 병거 주둔성과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다가 나누어서 배치하였다."(새번역)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과 병거는 단순한 군사 자산이 아니라, 고대 근동에서 경제력과 국제 영향력을 상징하는 자산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를 통해 국가 안보와 위상을 강화하였지만, 동시에 신명기적 왕권이 지향한 '하나님께 대한 신뢰' 대신 '경제력과 군사력에 대한 신뢰'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게 됩니다.

     

    크리스토퍼 J. H.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는 자신의 저서『Old Testament Ethics for the People of God』에서 이 점을 지적하며, 솔로몬의 정책은 "신앙의 대체물이 될 수 있는 경제적 안정 장치를 축적한 사례"라고 설명합니다.

    4. 경제적 확장이 왕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작동함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 솔로몬의 경제적 확장은 국력 신장의 결과가 아니라, 종교적 상징과 결합된 권력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특히 성전 건축은 솔로몬 경제 정책의 정점이자, 동시에 그 한계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솔로몬의 대규모 재정 동원과 경제 확장은 하나님을 위한 성전 건축이라는 거룩한 목적과 결합되어 있었기에, 쉽게 비판받지 않는 구조를 형성하였습니다. 열왕기상 8장에서 성전 봉헌 장면은 솔로몬 통치의 절정으로 묘사됩니다. 성전은 명백히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었고,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전은 솔로몬 왕권의 위엄과 국제적 위상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성전 건축에 동원된 막대한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성전이 왕궁과 인접해 배치되었다는 점은, 종교와 왕권이 긴밀히 결합된 통치 구조를 보여 줍니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성전 자체가 아니라, 성전이 기능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신명기 왕권 규정은 왕이 율법 아래 머무르며, 자신의 권력과 부를 절제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은 왕의 순종을 상징하기보다는, 왕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경제적 확장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었고, 그 결과 왕실 중심의 재정 집중과 백성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가려지게 됩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이 현상을 매우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1 Kings』와 및 여러 출판한 책들에서 솔로몬 체제를 다루며, '신앙 언어가 경제 권력을 가리는 장막이 될 위험'을 경고합니다. 풀어서 말하면 성전 중심의 경제 구조는 본래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였으나 왕권이 이를 독점할 경우 오히려 권력 집중을 신앙으로 포장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합니다. 

     

    특히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솔로몬의 통치에서 나타나는 언어의 변화에 주목합니다. 성전 건축과 왕실 행정은 반복적으로 '번영' 혹은 '평화' 또는 '지혜'라는 신앙적 어휘로 설명되지만, 그 이면에는 강제 노역과 과중한 조세 부담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신앙은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상실하고, 오히려 권력을 보호하는 담론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것은 신명기 왕권 규정이 가장 경계했던 상황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님을 위한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왕의 통치를 신성화하는 상징으로 인식됩니다. 왕이 성전을 세웠다는 사실은 곧 왕이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증거로 해석되었고, 이것은 왕권에 대한 비판을 곧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구조를 낳았습니다. 이로 인해 경제 정책에 대한 사회적 질문과 윤리적 성찰은 점점 약화되었습니다. 

     

    브루그만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성전이 하나님을 증언하기보다 왕을 변호하는 체제로 전락할 위험'이라고 표현합니다. 솔로몬 시대를 이스라엘 역사에서 신앙과 권력이 가장 세련되게 결합된 시기로 평가하면서도, 바로 그 점이 가장 큰 신학적 위험이라고 지적합니다. 신앙이 권력을 견제하지 못할 때 신앙은 더 이상 해방의 언어가 아니라 지배의 언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솔로몬의 경제적 확장은 단순한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왕권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거룩한 목적으로 지어진 성전은 오히려 경제적 집중과 권력 강화를 가리는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가 의도한 제한된 왕권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이러한 긴장은 이후 르호보암 시대에 폭발적으로 드러나며, 왕국 분열이라는 역사적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신앙적 목적이 경제 정책과 결합될 때, 어느 때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 되고, 어느 때 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되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솔로몬의 사례는 거룩한 명분(성전건축)이 신명기의 왕의 규정을 이탈한 왕권 강화 및 경제 정책을 옹호하는 도구로 전락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언제나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5.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한 솔로몬 경제 정책의 결과 및 신학적 평가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신명기 왕권 규정과 충돌하는 솔로몬 경제 정책 솔로몬 경제와 신명기 왕권 규정의 충돌은 즉각적인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긴장은 그의 사후에 분열이라는 형태로 폭발합니다. 열왕기상 12장에서 나타나는 북이스라엘의 반발은, 솔로몬 시대에 누적된 경제적 부담과 중앙집권적 구조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 줍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경제적 성공이 신앙적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신명기 왕권 규정은 번영의 순간일수록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기준이었습니다.

     

    솔로몬 경제와 신명기 왕권 규정의 충돌은 고대의 정치 문제를 넘어,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성장과 축적 및 안정이 하나님의 뜻과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솔로몬의 사례를 통해 경제를 통제하지 못한 신앙은 결국 공동체를 위기로 이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실패담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왕조의 번영 속에서도 하나님의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경제적 성공 앞에서도 절제와 책임이 신앙의 핵심임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