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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의미있는 경제행위

📑 목차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이야기를 경제적 관점에서 의미있는 경제행위로 보고 '경건한 감정'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경제행위'라는 관점에서 신학적으로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향유의 가치와  재화의 사용 및 여성의 경제적 결단을 통해 복음서의 경제 윤리를 해석합니다. 신앙과 경제가 분리될 수 없다는 복음서의 중요한 통찰을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되묻는 작업으로 풀어가려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의미있는 경제행위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요한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이야기는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오랫동안 회개 혹은 헌신 혹은 사랑이라는 정서적 언어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매우 구체적인 경제적 판단과 자산 사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향유라는 고가의 물질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여 자신의 재산을 신앙 고백의 방식으로 전환한 인물입니다.

    1. 향유 사건의 본문과 경제적 문제 제기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의미있는 경제행위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이야기는 마태복음 26장 6절~13절, 마가복음 14장 3절~9절, 요한복음 12장 1절~8절에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가운데 마가복음 14장 4절과 5절에 향유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수치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마가복음 14장 4절과 5절은 "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새번역) 여기서 '삼백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 한 사람의 거의 1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는 이 여인이 사용한 향유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상당한 자산 가치가 있는 재화였음을 뜻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향유는 현금처럼 쉽게 유통되지는 않았습니다. 보관 가치가 높고 위기 상황에서 현금화할 수 있는 일종의 저장 자산이었습니다. 특히 여성에게 향유와 같은 물품은 결혼 지참금이나 미래 생계 혿은 사회적 신분을 보존하는 중요한 경제적 수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여인의 행동은 즉흥적인 감정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안전망을 의식적으로 해체하는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행동이 공동체 안에서 '낭비'로 인식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곧 경제적 합리성과 신앙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 줍니다.

    2. 향유는 왜 '낭비'로 보였는가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의미있는 경제행위 제자들이 이 여인의 행동을 문제 삼았던 핵심은 그녀의 헌신 자체가 아니라, 재화를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마가복음 14장 5절에 언급하였듯이 "이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더라면" 이라는 반응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도 충분히 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는 경제 논리였습니다. 여기에는 제한된 자원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하며, 고가의 향유를 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소비라는 판단이 그 안에 깔려 있습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날의 경제 윤리, 특히 공공성과 분배 정의를 중시하는 담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의 말은 겉으로 보면 매우 도덕적으로 보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는 주장은 복음서 전체의 흐름과도 어긋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반복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 제자들의 반응은 단순한 탐욕이나 무지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경제적 합리성과 도덕적 책임을 결합한 매우 설득력 있는 판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여인의 행위에 대한 제자들의 판단 방식과 다르게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마가복음 14장 6절~9절에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새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일'로 번역된 표현은 헬라어 καλὸν ἔργον(kalon ergon, 칼론 에르곤)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착한 행동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공동체 안에서 가치있고, 기억될 만하며, 의미 있는 결과를 낳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이 여인의 행동을 감정적 충동이나 낭비적 소비로 보지 않으시고 신앙의 실천으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예수가 이 행동을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라고 규정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자원의 사용 목적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가 경제 행위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재화의 사회적 효율성만을 보았지만, 예수는 그 재화가 향한 관계적 방향을 보셨습니다. 향유는 사라졌지만, 그 사용은 예수의 정체성과 사역의 의미를 드러내는 행위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약학자 조엘 그린(Joel B. Green)은 자신의 저서『The Gospel of Luke』에서 이 장면을 해석하며, 예수가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는 경제적 합리성보다 관계적 가치가 우선한다는 질서를 드러내신다."고 설명합니다. 그린에 따르면, 이 사건은 재화의 분배 문제를 무시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경제 윤리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를 전환하는 본문입니다. 문제는 얼마를 썼는가가 아니라, 그 사용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어떤 의미를 창출하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제자들의 판단은 옳은 질문을 던졌지만, 충분히 깊이 들어가지 못한 질문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 도움 역시 하나님 나라의 관계 질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해 경제적 재화가 단순히 분배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 고백과 관계 형성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결국 향유가 '낭비'로 보였던 이유는, 그것이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경제적 계산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시선에서 이 향유는 사라진 재화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낸 행위로 남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복음서는 경제를 포기하거나 초월하기 보다는 경제를 다른 기준으로 재해석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효율이 아니라 관계이며, 축적이 아니라 헌신이라는 점을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해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3. 의미있는 경제행위로 드러난 신앙 고백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의미있는 경제행위 요한복음 12장 3절은 향유를 붓는 여인을 마리아로 특정하며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새번역)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동생으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을 만큼 이미 예수와 개인적인 신뢰와 관계적인 신뢰를 쌓아 온 인물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매우 구체적인 경제적이고 신체적 행위로 묘사합니다. 경제적이라는 말은 히말라야 지역에서 수입된 고급 향유를 비상금에 가까운 자신의 경제적 안전망을 예수 앞에 가져왔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체적 행위라는 뜻은 마리아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은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공개적인 공간에서 풀어내는 것은 수치와 오해 더 나아가 사회적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행동은 자신의 체면과 명예를 포기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는 예수께 자신의 비상금에 가까운 값비싼 자산(향유)과 사회적 정체성(머리카락)을 동시에 드린 것입니다. 마리아의 신앙 고백은 감정이나 언어가 아니라, 경제적 결단과 몸의 행위로 표현됩니다. 그녀는 "예수는 나에게 이 정도의 가치가 있는 분이다"라고 말로 선언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자산을 사용함으로써 그 고백을 실천합니다.

     

    여성신약학자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Elisabeth Schüssler Fiorenza)는 자신의 자서 『In Memory of Her』에서 이러한 여성들의 행동을 '재정과 노동을 통해 실천된 제자도'라고 규정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종종 공식적인 가르침의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자신의 자원과 몸을 통해 예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학적 행위를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마리아는 침묵한 주변 인물이 아닌 매우 분명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중심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 없는 설교이자 경제적측면에서의 신앙 고백입니다. 향유는 사라졌지만, 그 사용 방식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 질서를 증언하는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결국 이 본문은 우리가 신앙고백을 할 때, 그것이 우리의 자산 구조와 삶의 우선순위까지 변화시키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마리아의 이야기는 어디에 투자하고 무엇을 포기하는가로 신앙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향기롭고 고귀한 몸짓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4. 예수의 응답과 복음서의 경제 윤리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의미있는 경제행위 마리아의 ' 의미있는 경제행위'를 예수는 복음과 함께 전하여 질 것이라고 마가복음 14장 9절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새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기억하다'는 헬라어 μνημόσυνον(mnēmosynon, 므네모쉬논)과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재현되고 해석되는 기억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는 마리아의 '의미있는 경제행위'를 복음 선포의 일부로 포함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서가 재산을 악으로 단정하지도 않고 무조건 축복으로 찬양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여전히 반복되는 말이지만 문제는 소유 그 자체가 아니라, 소유의 방향성과 목적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재화를 가지고 예수의 사역과 예수의 존재에 대한 신앙의 반응으로 사용했습니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의 이야기는 오늘날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대는 무엇을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그 자산은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이러한 물음은 신앙이 곧 경제적 선택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소유한 가장 값비싼 재화를 가지고 예수의 가치를 평가했습니다. 더 나아가 마리아 자신의 체면과 명예를 포기할 만큼 예수에 대한 가치는 드높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의미있는 경제행위와 의미있는 행동으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가장 깊은 신앙 고백은 종종 가장 구체적인 경제적 결단의 형태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