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삭개오의 회개로 재정렬된 경제활동

📑 목차

    세관장 삭개오의 경제활동을 역사적 관점과 언어학적 관점 그리고 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예수를 만난 후 삭개오의 회개 결과로 변화된 경제 활동 방식과 부의 사용 방식에 대해 알아봅니다. 경제적 정의의 실천을 통해 삭개오의 경제활동의 재정렬된 모습을 살펴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삭개오의 회개로 재정렬된 경제활동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삭개오의 회개로 재정렬된 경제활동 누가복음 19장 1절에서 10절 까지 등장하는 삭개오는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 구조 속에서 경제 권력을 행사하던 인물입니다. 이러한 인물이었던 삭개오를 누가복음 19장 2절은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새번역)라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삭개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평범한 세리 삭개오가 아니라 세관장으로서 세금 징수 체계의 상층부에 있었으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삭개오가 여리고를 들어가 지나가고 있는 예수를 만나면서 회심하는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좀더 세밀히 말하면 누가복음 19장 1절에서 10절까지는 삭개오가 소개되면서 예수와 삭개오의 만남, 삭개오가 자신의 부를 형성하기 위한 경제 활동에 관한 이야기, 예수를 만난 이후 뉘우침, 그리고 자신의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실천이라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1. 세관장 삭개오의 경제 구조와 역사적 배경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삭개오의 회개로 재정렬된 경제활동 삭개오는 '세관장'으로 소개됩니다. 헬라어로는 ἀρχιτελώνης (architelōnēs, 아르키텔로네스)이며, 이는 ‘우두머리 세리’를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ἀρχι- (archi-, 아르키) 는 '우두머리' 혹은 '최고의'를 의미합니다. 또한 헬라어로 τελώνης (telōnēs, 텔로네스) 는 '세리' 혹은 '세금 징수원'을 뜻합니다. 따라서 ἀρχιτελώνης는 세리들의 우두머리 즉 '세리장(세관장)' 를 의미합니다. 그 당시 세금을 징수하는 세금 징수원인 세리는 로마 제국의 조세 및 공납 제도 속에서 세금 부과를 대행하였던 민간 계약자였습니다. 신학자 에드워드 샌더스(E. P. Sanders)는 그의 저서 Jesus and Judaism에서 "세리들은 단순한 세금 징수원이 아니라, 로마 권력과 결탁한 경제적 중개 계층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정해진 세금 이상을 징수하여 차액을 이익으로 취했습니다. 따라서 세리의 부는 구조적으로 착취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또한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자신의 저서 Jerusalem in the Time of Jesus 에서 여리고가 발삼(향유)생산과 교역의 핵심지 혹은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지적하면서 삭개오가 활동하였던 때 상업적 요충지였음으로 매우 부유한 도시였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삭개오의 부가 단순한 생계 수준이 아니라 상당한 자본 축적의 결과였음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삭개오의 이름입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זַכַּי (zakkay, 자카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זַכַּי (zakkay, 자카이)의 어근은  זכה (zkh, 자카)인데 '깨끗하다' 혹은 '의롭다' 혹은 '죄가 없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זַכַּי (zakkay, 자카이)는 '의로운 자', '정결한 자', '무죄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직업인 세리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부정한 직업 중 하나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과 삭개오의 삶의 부조화는 신학적 긴장을 형성합니다.

    2. 경제활동으로 인한 부의 형성과 도덕적 문제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삭개오의 회개로 재정렬된 경제활동 누가복음 19장 8절에서 삭개오는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새번역)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강제로 빼앗다'는 헬라어 συκοφαντέω (sykophanteō, 쉬코판테오)입니다. συκοφαντέω (sykophanteō, 쉬코판테오)는 '거짓 고발하다', '협박하여 빼앗다', '부당하게 착취하다'.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과세가 아니라 협박이나 고발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이것은 경제적 죄가 단지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학자 크레이그 블롬버그(Craig Blomberg)는 자신의 저서  Neither Poverty nor Riches 에서 "예수는 부 자체를 정죄하지 않지만, 부가 형성되는 과정과 사용 방식에 대해 철저히 윤리적 기준을 적용하신다"고 말합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일시적인 내적 감정의 변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제 행위로 이어지는 삶의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삭개오는 "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새번역)라고 말하면서 출애굽기 22장 1절을 적용합니다. 출애굽기 22장 1절 "어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그것을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는 소 다섯 마리로, 양 한 마리에는 양 네 마리로 갚아야 한다."(새번역)라는 말씀 중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아야 한다'는 규정을 '네 배 배상'의 근거로 적용합니다.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다'라고 엄격한 기준을 스스로 적용한 것으로 봅니다. 율법에서 일반적인 사기나 착취에 대한 배상은 두 배가 일반적이었고, 고의적 절도에 대해서는 네 배 혹은 다섯 배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삭개오의 경우는 삭개오 형식적인 배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가장 엄한 기준을 스스로가 그대로 따른 것으로 봅니다. 

    3. 회개가 가져온 경제 활동의 방식과 부의 사용 방식 변화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삭개오의 회개로 재정렬된 경제활동 삭개오가 누가복음 19장 8절에서 스스로 단언을 들으신 후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9장 9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새번역)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선언은 한 개인의 종교적 체험을 인정하는 말씀이 아니라, 그의 존재 전체와 삶의 구조가 새롭게 되었음을 공적으로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구원'은 헬라어로 σωτηρία(sōtēria, 소테리아)입니다. 이 단어는 단지 사후 천국행을 의미하는 축소된 개념이 아닙니다. 헬라어 σωτηρία는 본래 '구출' 혹은 '회복' 혹은 '안전하게 함' 혹은 '온전하게 함' 이라는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영적 차원뿐 아니라, 삶의 총체적 회복과 공동체적 관계의 복원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신학자 조엘 그린(Joel B. Green)은 그의 저서 The Theology of the Gospel of Luke 에서 "누가복음에서의 구원은 단지 개인의 죄 사함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적 위치와 관계의 회복을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삭개오 사건은 바로 이러한 누가적 구원 이해를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단순히 마음속으로 죄를 뉘우친 것이 아니라, 재산의 절반을 나누고, 부당하게 취한 것을 네 배로 배상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삭개오의 회개는 헬라어 μετάνοια(metanoia, 메타노이아)의 본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μετάνοια는 '마음을 바꾸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감정적 후회가 아니라 삶의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방향이 바뀌면 삶의 구조도 바뀌게 됩니다. 삭개오에게 있어 회개는 경제 활동의 방식과 목적이 전환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는 자신의 저서 The Politics of Jesus 에서  "예수의 선포는 개인의 내면적 도덕성에 머무는 메시지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창조하는 정치적 사건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요더에 따르면, 예수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현재의 역사 속에 구현하도록 요구합니다. 삭개오 사건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가 개인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구체적 사례인 것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직업인 세관장을 그만 두기로 다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자가 되는 능력을 상실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삭개오는 부의 사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였을 뿐입니다. 이전에는 세관장이라는 권력을 활용하여 부를 축적하였지만 이제는 정의와 나눔의 원리에 따라 재산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부의 소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를 대하는 태도와 사용 목적이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크레이그 블롬버그(Craig Blomberg)는 자신의 저서  Neither Poverty nor Riches 에서 "성경은 부 자체를 절대 악으로 보지 않지만, 부가 하나님을 대신할 때 우상이 되며, 정의를 침해할 때 죄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삭개오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상의 자리에 있었던 부를 하나님 아래로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재산을 자신의 정체성의 근거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실천하는 수단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또한 삭개오의 배상 선언은 단순한 자선 행위와 구별됩니다. 자선은 남는 것에서 일부를 나누는 행위일 수 있지만, 배상은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는 정의의 행위입니다. 그는 단순히 '기부'를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저지른 경제적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 회개가 사회적 정의와 결합될 때 비로소 온전한 구원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말씀하신 부분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당시 세리는 종교적으로 부정한 자로 간주되어 공동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정의의 실천을 통해 그는 다시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 선언되었습니다. 구원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의 지위 회복을 포함합니다.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자신의 저서 A Public Faith 에서 "기독교 신앙은 사적 영역에 갇혀 있을 수 없으며, 공적 영역에서 정의와 화해를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사적인 신앙 체험이 아니라, 공적이고 경제적인 결단이었습니다. 그의 집에서 시작된 변화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결국 삭개오의 경제 활동은 재정렬되었습니다. 축적 중심의 경제에서 나눔 중심의 경제로 재정렬되었습니다. 착취 구조에서 회복 구조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소유의 절대성이 해체되고, 정의와 자비가 경제 활동의 기준이 됩니다. 

     

    삭개오 사건은 현재 우리의 실제 경제 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신앙 고백대로 소비 습관과 투자 방식 및 납세태도 그리고 사업 윤리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합니다. 삭개오는 입의 말로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직업은 그대로 이어갔을 것이지만 세금을 징수하고 세금을 받아 장부에 기록하는 등의 경제활동을 바꾸어가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결국 누가복음 19장 1절에서 10절까지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은 영혼의 구원과 동시에 경제의 구원으로 귀결됩니다. 예수가 삭개오에게 선언한 구원은 삭개오가 속안 세무 현장과 경제활동 구조 속에서 구현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바로 그 통전적 구원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부의 방향 전환 청지기로 부름 받음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삭개오의 회개로 재정렬된 경제활동 삭개오의 이야기는 '부의 형성 과정은 정의로운가' 혹은 '부의 사용은 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인가' 혹은 '회개는 경제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를 살펴보게 합니다.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자신의 저서  Exclusion and Embrace 에서 "기독교적 화해는 반드시 경제적 정의를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구원을 말하면서 경제 정의를 외면한다면, 삭개오가 단언했던 누가복음 19장 8절 말씀을 다시금 곱씹어 봐야 합니다. 삭개오의 단언은 윤리적 책임감을 가지고 정의로운 배상과 자발적 나눔을 실천하고자 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다른 부자들과 차이가 없는 같은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만난 후 일반적 부자들과 다르게 부의 노예에서 벗어나 부의 청지기로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회개는 관념적인 고백으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재산의 절반을 나누고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배상하겠다는 구체적 결단이 뒤따랐습니다. 이것은 삭개오의 경제활동은 중단되지 않았지만, 그 방향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표지가 됩니다. 이에 예수는 누가복음 19장 9절과 10절에서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예수가 말한 '잃은 것'은 개인의 영혼과 왜곡된 경제질서 속에서 잃어버린 정의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