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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공생애 전 목수 기술 노동자로서 경제활동

📑 목차

    목수로서 요셉의 직업과 1세기 갈릴리의 경제 구조에 대해 알아봅니다. 목수'는 헬라어로 τέκτων(tektōn, 텍톤)인데 '텍톤'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목수로서 예수의 노동과 성육신 신학을 들여다봅니다. 노동의 존엄성과 하나님 나라 경제질서에 대해 고찰해 봅니다. 목수인 예수가 가르쳐주는 노동신학에 대한 내용도 조명해 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공생애 전 목수 기술 노동자로서 경제활동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공생애 전 목수 기술 노동자로서 경제활동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즉 약 삼십 년 이전의 기간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을 했었는지 신약성경은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목수와 관련하여 기록된 말씀은 마태복음 13장과 마가복음 6장입니다. 다만 마태복음 13장 55절은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는 분이 아닌가? 그의 아우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가 아닌가? "(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마가복음 6장 3절은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 달갑지 않게 여겼다."(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예수가 단지 목수의 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목수로 일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따라서 예수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목수로서 노동과 책임을 다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가정 경제를 위한 시간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여기서 '목수'는 헬라어로 τέκτων(tektōn, 텍톤)입니다. 여기서 '텍톤'은 나무를 다루는 목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τέκτων(tektōn, 텍톤)은 건축과 관련된 전반적 기술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재 혹은 돌 혹은 농기구 제작 혹은 건축 보수 등 실질적인 생활 기반을 떠받치는 기술 직업에 해당하는 모든 기술 노동자를 가리키는 단어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 요셉과 아들 예수는 목수로서 기술 노동자의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1. 목수로서 요셉의 직업과 1세기 갈릴리의 경제 구조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공생애 전 목수 기술 노동자로서 경제활동 마태복음 1장 19절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새번역)에서는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로운'은 헬라어 δίκαιος(dikaios, 디카이오스)입니다. '디카이오스'는 종교적 경건성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에 충실하며 공동체적 책임을 다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직업이었던 목수는 헬라어로 τέκτων(tektōn, 텍톤)입니다. 목수는 고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중간 계층에 해당하는 기술 노동자였습니다. 중간계층에 해당하는 기술 노동자는 귀족도 아니었고, 완전한 빈민도 아니었습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그의 저서 『The Historical Jesus』에서 "예수는 농민 계층도, 지배 엘리트도 아닌,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장인 계층에 속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가정은 극빈층은 아니었지만 노동 없이는 생존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한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자신의 저서 『Jesus Remembered』에서 "나사렛은 세포리스와 지리적으로 가까웠으며, 헤롯 안티파스의 도시 건설 정책은 기술 노동자의 수요를 증가시켰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예수가 마을 수공업자가 아닌 큰 규모의 건축 경제 속에서 기술 노동자로 일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예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은 도시화와 같은 경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술 노동자로의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역사적 현실과 동떨어진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변동과 경제적 변동 한가운데에서 일했던 기술 노동자였습니다.

    2. 목수로서 예수의 노동과 성육신 신학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공생애 전 목수 기술 노동자로서 경제활동 요한복음 1장 14절은 "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육신'은 헬라어 σάρξ(sarx, 사르크스)입니다. 인간의 연약성과 유한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셨다는 선언은 예수가 인간 노동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의미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자신의 저서 『Discipleship』에서 "그리스도는 인간 존재의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안으로 들어오셨다"라고 주장합니다. 예수의 현실에는 대부분 인간들의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땀과 수고 및 경제적 책임 그리고 가족 부양의 부담이 존재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는 공생애 시작 전 약 삼십 년 동안은 전도자 혹은 설교자가 아니라 기술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예수의 이러한 노동은 구속사의 주변에서 서성였던 시간들이 아니라 성육신으로 오셔서 살았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또한 τέκτων(tektōn, 텍톤) 이라는 직업은 창조 질서와도 연결됩니다. 창세기 2장 15절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새번역)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어 그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는 기록을 통해서 노동은 창조 질서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여기서 말하는 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말하는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라는 표현은 두 개의 히브리어 동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맡다'는 히브리어 עָבַד(‘avad,아바드)입니다. 이 동사는 '일하다', '섬기다', '경작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עָבַד(‘avad,아바드)는 더 나아가 육체노동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적 의미까지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며 “섬기다”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돌보다'는 히브리어 שָׁמַר(shamar, 샤마르)라고 읽습니다.  히브리어 שָׁמַר(shamar, 샤마르) 는 '지키다', '보호하다', '보존하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책임 있게 보존하고 보호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2장 15절은 인간에게 단순히 노동을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섬기고 보호하는 사명을 위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후에 형벌로써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 질서 안에 이미 소명으로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든 웬함(Gordon J. Wenham)은 자신의 저서 『Genesis 1–15』에서 " 히브리어 עָבַד(‘avad,아바드)שָׁמַר(shamar, 샤마르) 의 결합은 인간을 에덴의 제사장적 관리자로 묘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히브리어 עָבַד(‘avad,아바드)  שָׁמַר(shamar, 샤마르) 동사들이 민수기에서 제사장이 성막을 섬기고 지키는 표현과 동일하게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노동은 단순하게 생산 활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조 세계를 돌보는 거룩한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존 월튼(John H. Walton)은 자신의 저서 『The Lost World of Genesis One』에서 "창세기 2장의 에덴은 하나님의 임재 공간이며, 인간은 그 공간을 관리하는 사제적 존재로 부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즉 노동이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가 목수 기술 노동자로 일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헬라어 τέκτων(tektōn, 텍톤)으로 불렸습니다. τέκτων(tektōn, 텍톤) 은 건축과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는 창조 세계의 물질을 다루며, 나무와 돌을 통해 인간의 삶의 터전을 세우는 일을 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그러한 노동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단순한 직업 선택 이상의 신학적 의미를 가집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후 노동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는 고된 현실이 되었지만, 예수는 육신을 입고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행보는 단순히 고난에 동참한다기 보다는 창조 질서의 본래 목적을 회복하시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자신의 저서 『Reformed Dogmatics』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은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며, 노동 역시 그 구속적 순종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노동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후 왜곡된 노동 세계를 회복하는 구속사적 행위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또한  N. T. 라이트(N. T. Wright)는 자신의 저서 『Surprised by Hope』에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폐기하지 않으시며, 창조를 새롭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목수 노동자 생활은 생계 활동을 넘어서 새 창조를 예표하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목수 노동을 통해 인간의 삶의 터전을 세우셨고, 공생애 활동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왜곡된 질서를 바로잡으셨습니다. 목수 노동의 자리에서부터 시작된 그분의 순종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고, 부활을 통해 새 창조의 문을 여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일하는 자리에서의 노동 역시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회복에 참여하는 행위가 됩니다. 동시에 목수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3. 노동의 존엄성과 하나님 나라 경제질서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공생애 전 목수 기술 노동자로서 경제활동 마가복음 1장 15절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새번역)라는 말씀을 선포하면서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단지 내면적 종교 체험이 아니라, 삶 전체를 포함하는 통치 질서입니다.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은 자신의 저서『Jesus and the God of Israel』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라고 설명합니다. 공생애 전 목수 기술 노동자로 살아온 예수는 일용 노동자들의 불안과  채무자들의 고통 및 가난한 자들의 현실을 몸소 경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노동과 임금 문제를 직접 다루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를 설명하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계산을 넘어서는 은혜의 질서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노동의 존엄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4. 목수인 예수가 가르쳐주는 노동신학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예수의 공생애 전 목수 기술 노동자로서 경제활동 팀 켈러(Timothy Keller)는 자신의 저서『Every Good Endeavor』에서 "모든 정직한 노동은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의 뜻은 직업의 귀천이 아니라, 직업에 대한 태도와 목적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정직한 세금 납부와 공정한 계약 및 약자에 대한 배려는 사회적 측면에서의 책임보다는 신앙적 측면에서의 실천사항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목수로서 예수의 노동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직장과 사업 현장을 향한 신학적 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실업, 자영업의 구조적 불안, 생존을 위한 과도한 경쟁 등 다양한 경제적 측면의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목수로서 예수의 경제활동은 노동은 신앙과 분리되지 않다는 것을 전해줍니다. 노동에 대한 기술과 성실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 가치에 따라 오늘날 경제활동은 재정렬되어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목수로서 예수의 경제활동은 성육신의 현실적 깊이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노동의 세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성육신 하신 예수를 통해서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는 목수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땀 흘려 생계를 유지하셨습니다. 그 노동의 시간은 구속사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시간들 입니다. 목수로서 노동은 구속사의 배경이 아니라, 구속사를 이루어가는 무대였습니다. 각자 일하고 있는 직장과 공장, 사무실과 시장 역시 하나님 나라가 임할 자리입니다. 목수로서 예수의 삶은 오늘 우리의 경제활동이 거룩해질 수 있음을 증언합니다. 또한 노동은 단지 생존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또 하나의 다른 방식임을 가르쳐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