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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포도원 품꾼의 경제활동으로 알아본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마 20:1~16)

📑 목차

    포도원 품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과 은혜, 정의와 보상의 관계를 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다시 세워 보고자 합니다. 헬라어 성경의 원어 분석과 신학자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살펴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포도원 품꾼의 경제활동으로 알아본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마 20:1~16)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포도원 품꾼의 경제활동으로 알아본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 마태복음 20장 1절은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이 구절은 경제 활동이라는 영역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계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더 나아가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까지는 포도원 품꾼들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정의를 드러내는 경제적 비유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당시 팔레스타인 사회의 노동 구조와 임금 체계를 배경으로 하여 하나님의 통치 원리 다시말하면 하나님 나라 경제질서를 말해주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1. 1세기 팔레스타인의 노동시장과 데나리온의 경제 구조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포도원 품꾼의 경제활동으로 알아본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 마태복음 20장 2절은 "그는 품삯을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보냈다."(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데나리온'은 헬라어로 δηνάριον(dēnarion, 데나리온)입니다. 데나리온은 로마 제국의 은화로, 로마 병사의 하루 급여입니다. 또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하루 품삯인 일 데나리온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금액에 가까운 돈 입니다. 또한 '일꾼'은 헬라어로 ἐργάτης(ergatēs, 에르가테스)입니다. 단순한 고용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도시 빈민 계층이 여기서 말하는 일꾼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20장 2절의 '일꾼'은 도시 빈민 계층이 하루 단위로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구조를 반영합니다. 당시 노동시장은 매우 불안정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루 일을 얻지 못하면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구조였습니다. 신학자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자신의 저서 『The Parables of Jesus』에서 "이 비유는 1세기 갈릴리의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 현실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당시 시장 광장에서 대기하던 노동자들의 상황을 언급하며, 이들이 구조적 빈곤 속에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단순한 신앙적인 상징으로써 언급한 내용이 아니라 경제적 약자의 실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실제 현실의 경제 구조를 외면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제 현실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는 선포됩니다.

    2. 하나님 나라의 경제질서인 은혜정의와 계약정의 사이의 긴장 구조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포도원 품꾼의 경제활동으로 알아본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까지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동일하게 임금을 지급하는 장면입니다. 마태복음 20장 9절과 10절은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포도원 주인이 임금 분배를 하는 과정 중에 잘못 지급된 임금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인간측면에서 생각하는 정의개념과 하나님측면에서 판단하시는 은혜개념이 부딪치는 충돌을 보여 줍니다.

     

    본문 2절에서 포도원 주인은 일꾼들과 "품삯을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보냈다."(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약속하다'는 헬라어로 συμφωνέω(symphōneō, 심포네오)입니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함께 소리를 맞추다'라는 의미입니다. 법적합의 혹은 계약체결의 의미도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포도원 주인과 일꾼들 사이에는 명확한 계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일꾼들은 하루 노동을 제공하기로 하고, 포도원 주인은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기로 상호합의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정의의 측면에서 포도원 주인과 일꾼들 사이의 상호합의 요건을 보면 부족함 없이 채워졌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계약내용에 따라서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기 때문에 상호합의 내용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맨 처음 온 일꾼들 역시 상호합의 내용대로 약속된 금액인 한 데나리온을 정확히 받았습니다. 따라서 맨 처음 온 일꾼들의 불만은 법적권리 침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비교에서 비롯된 감정적 반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 온 일꾼들도 동일한 임금을 받는 순간, 맨 처음 온 일꾼들의 정의 감각은 흔들립니다. 이때 포도원 주인은 15절에서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였다."(새번역)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후하다'는 헬라어로 ἀγαθός(agathos, 아가토스)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도덕적 선을 넘어서 관대함과 후함 및 너그러움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집주인은 자신이 불의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선함이 시기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신학자 크레이그 블롬버그(Craig L. Blomberg)는 자신의 저서 『Interpreting the Parables』에서 "이 비유는 계약정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은혜의 정의를 드러낸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는 공로에 비례하는 보상 체계에 기초하지 않으며, 주권적 은혜에 기초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R. T. 프랑스(R. T. France)는 자신의 저서 『The Gospel of Matthew』에서 '이 비유의 중심은 노동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시는가에 대한 계시'라고 밝힙니다.  맨 처음 온 일꾼들의 반응이 사실상 인간의 종교적 공로 의식을 반영한다고 지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수고를 근거로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공로 계산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신학적 긴장을 발견합니다. 계약정의는 인간 사회 유지에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계약 정의를 유지한 채 그것을 초월하는 은혜정의를 추가합니다. 계약은 관계를 형성하지만, 은혜는 관계를 완성합니다. 하나님 나라 경제는 계약정의 위에 은혜정의를 더하는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나라의 경제질서는 경제적 평등이 아닌 생존 보장의 신학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포도원 품꾼의 경제활동으로 알아본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까지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는 평등주의 선언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의 의도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에게 품삯으로 주는 하루 한 데나리온은 당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도시 빈민 계층 한 가정이 하루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비였습니다. 따라서 하루 한 데나리온의 임금은 도시 빈민 계층에 속하는 이들의 하루 삶의 보장을 위해 필요한 금액이었습니다. 헬라어 δηνάριον (dēnarion, 데나리온)은 로마 병사의 하루 급여이기도 했고, 일용 노동자의 표준 임금이었습니다. 만일 오후 다섯 시에 온 품꾼이 한 시간에 비례한 임금만 받았다면, 그는 가족을 먹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학자 벤 위더링턴 3세(Ben Witherington III)는 자신의 저서 『Matthew』에서 "집주인의 결정은 시장 원리가 아니라 자비의 원리에 근거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 비유는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혹은 성취도 등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존권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낸다고 분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는 관계적이며, 생명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계 중심이고 생명 중심인 하나님께서는 오후 다섯 시에 온 품꾼도 동일한 인간 존엄을 지닌 존재로 여기셨습니다. 그 품꾼도 역시 생존에 필요한 삯이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울리히 루츠(Ulrich Luz)는 자신의 저서 『Matthew 8–20』에서 '하나님의 의는 계산적 정의가 아니라 자비에 뿌리를 둔 의'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히브리어 צדקה(tsedaqah, 체다카)의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체다카는 법적 정의가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관계적 정의를 의미합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성과중심 문화와 능력주의에 대한 논의가 강합니다. 그 결과 취업 경쟁과 승진 경쟁 및 성과 평가 체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보다 숫자로 더 쉽게 환원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인간의 가치가 노동이나 생산성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확실하게 단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는 무조건적인 동일 분배보다는 최소한 인간의 생존과 존엄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결국 이 비유는 생명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계약 정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순간 은혜정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 경제 질서는 성과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 가치를 성과보다 우위에 둡니다. 

    4. 하나님 나라의 경제질서는 마지막이 첫째가 되는 역전의 경제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포도원 품꾼의 경제활동으로 알아본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는 16절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새번역)으로  끝맺습니다. 여기서 '꼴찌'는 헬라어로 ἔσχατος(eschatos, 에스카토스) 입니다. '첫째'는 헬라어로 πρῶτος(prōtos, 프로토스)입니다.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된다는 것은 최종적인 역전을 의미합니다. 신학자 울리히 루츠(Ulrich Luz)는 자신의 저서 『Matthew 8–20』에서 "이 구절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 체계가 세속적 위계 질서를 뒤집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가치는 성취도의 순위에 따라 결정되지 않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를 보여줍니다. 실제적인 경제현실 속에서 품꾼들의  생존 보장을 위해서 세상의 계약정의보다 하나님 은혜정의를 적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 중심의 길로 인도하는 은혜의 질서를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사회 속에서 공정성을 존중하되, 동시에 약자의 생존을 보장하는 은혜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포도원 품꾼 비유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신학적 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