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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경제활동 관점에서 살펴보기(눅 10:29~37)

📑 목차

    율법교사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는 질문이 율법교사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이웃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를  경제활동의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헬라어 성경과 1세기 팔레스타인 사회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신학자들의 해석을 종합하여 하나님 나라의 경제 윤리를 고찰하고자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경제활동 관점에서 살펴보기(눅 10:29~37)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경제활동 관점에서 살펴보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 누가복음 10장 29절부터  37절까지 기록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기독교 윤리의 정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하나님 나라의 경제 질서를 드러내는 중요한 신학적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특히 35절에 등장하는 '두 데나리온'은 단순한 금전적 수단이 아니라, 자비가 어떻게 경제 행위로 구체화되는지를 보여 주는 핵심 구절입니다. 

    1. 사마리아인으로까지 이웃 확대와 경제적 비용을 동반하는 의로움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경제활동 관점에서 살펴보기 누가복음 10장 29절에서 37절까지 말씀은 한 율법교사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한 율법교사의 질문은 누가복음 10장 29절에 "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새번역)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옳다'는 헬라어 δικαιόω(dikaioō, 디카이오오)인데 법적 의로움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질문은 단순한 윤리적 호기심이 아니라, 의의 기준과 경계 설정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이면서 사회적인 논쟁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곧 자원 배분의 범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웃'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따라, 나의 시간, 나의 노동, 나의 재정이 누구에게 사용될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자신의 저서『The Parables of Jesus』에서 "예수의 비유는 종종 율법의 경계를 재정의함으로써 공동체의 경제적 책임 범위를 확장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비유가 당시 유대 공동체의 내부적 연대 의식을 넘어, 적대적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까지 포함하는 급진적 재정의를 시도한다고 분석합니다. 또한 조엘 그린(Joel B. Green)은 자신의 저서 『The Gospel of Luke』에서 "이 비유는 율법의 해석을 사랑의 실천이라는 구체적 행위로 이동시킨다"고 밝힙니다. 여기서 사랑은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경제적 비용을 동반하는 행위임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대답은 '누가 이웃인가'라는 질문을 '누가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라는 능동적 질문으로 전환시킵니다. 이러한 전환은  경제적 주체성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2. '두 데나리온'의 가치와 사마리아인의 책임을 동반한 경제활동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경제활동 관점에서 살펴보기 누가복음 10장 35절은 "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새번역) 여기서 '데나리온'은 헬라어 δηνάριον(dēnarion, 데나리온)으로,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는 은화입니다.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였습니다. 따라서 두 데나리온은 동전 두 개가 아니라, 노동자가 약 이틀 동안 일한 가치의 보상인 것입니다.

     

    신학자 R. T. 프랑스(R. T. France)는 자신의 저서 『The Gospel of Luke』에서 '두 데나리온은 단기적 응급 처치를 넘어 일정 기간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 비용'이라고 평가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일회적 동정이 아니라, 회복하기 까지 드는 비용을 계산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벤 위더링턴 3세(Ben Witherington III)는 그의 저서『The Gospel of Luke』에서 "사마리아인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자산을 타인을 위해 다시 배치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우선순위가 변화된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이미 정해진 일정과 그 일정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자원을 조정하여 타인의 생명을 위해 먼저 사용하기로 합니다. 이것은 기부보다 차원 높은 경제적 구조 조정에 해당합니다. '돌보아 주다'에 쓰인 헬라어 동사는 ἐπιμελέομαι(epimeleomai, 에피멜레오마이)입니다. 

     

    ἐπιμελέομαι(epimeleomai, 에피멜레오마이) 는 ' 위에, ~에 대하여'라는 의미인 ἐπί (epi, 에피)와 '관심을 갖다', '마음을 쓰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μέλω(melō, 멜로)단어가 합성된 합성어 입니다. 따라서 ἐπιμελέομαι는 문자적으로 '~에 대하여 마음을 쓰다','돌보다', '관심을 기울이다'라는 의미 입니다. 그런데 ἐπιμελέομαι(epimeleomai, 에피멜레오마이)는 중간태 형태로 소유격 형태의 목적어를 취합니다. 따라서 그 의미는 '행위자가 그 행위에 직접 관여함', '행위자가 그 결과에 참여함',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책임적 개입' 입니다. 따라서 ἐπιμελέομαι(epimeleomai, 에피멜레오마이) '책임 있게 돌보다', '지속적으로 보살피다', '개인적 관여 속에서 관리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더 나아가 의료나 복지 및 서비스 등이 장기적인 케어가 가능한 관계적 책임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을 부여하는 단어로 볼 수 있습니다.

    3. 측은한 마음으로 실천한 사마리아인의 경제활동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경제활동 관점에서 살펴보기 31절은 "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33절은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새번역)라고 기록합니다. 31절에서는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라고 하는데 33절에서는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라고 이 대조됩니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입니다. 헬라어로  σπλαγχνίζομαι, splagchnizomai(스플랑크니조마이)입니다. 이것은 내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연민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의 자비는 감정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자신의 짐승에 태우고, 주막으로 데려가고,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케네스 베일리(Kenneth E. Bailey)는 자신의 저서 『Jesus Through Middle Eastern Eyes』에서 "이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은 단순히 돈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명예와 안전을 위험에 노출시켰다" 고 분석합니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 사회에서 배척받던 집단이었기에, 그가 유대인을 돕는 행위는 사회적 긴장을 동반했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갈등은 기원전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많은 주민이 포로로 끌려가고, 이방 민족들이 그 지역에 이주해 왔습니다. 열왕기하 17장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 중에  혼합 결혼과 종교 혼합이 일어났습니다. 남유다 중심의 유대인들은 이러한 혼합을 '정통 신앙의 훼손'으로 간주하였고, 사마리아 지역 주민들을 순수한 언약 공동체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갈등은 예배 장소 문제에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유일한 예배 중심지로 여겼으나,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을 거룩한 산으로 인정하고 그곳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자신의 저서 『Jewish Antiquities』에서 사마리아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이단적 상징으로 간주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로 인해 종교적 정통성 논쟁이 격화되었고, 상호 왕래와 교제가 사실상 단절되었습니다. 따라서 1세기경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수백 년간의 적대가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9절은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새번역)라고 기록하는데 이 구절 속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의 단절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이것은 개인 감정만이 아니라 상호 식사 금지와 혼인 금지 및 종교 교류 단절 그리고 여행 시 사마리아 지역 우회 등의 구체적 사회적 분리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체계가 아니라, 관계 회복을 위한 책임있는 경제활동을 수반하는 구조입니다.

    4. 사마리아인이 건넨  '두 데나리온'의 측면에서 본 하나님 나라의 경제

    성경에 나타난 경제관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경제활동 관점에서 살펴보기 선한 사마리아인이 여관주인에게 건넨 '두 데나리온'은 강도만난 사람을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되어도 책임있는 자세로 돌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관계회복의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경제활동의 근거가 됩니다. 더 나아가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두 데나리온은 하나님 나라 경제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됩니다. 계약의 관계에서 출발하기 보다는 측은한 마음에서 출발하며, 효율보다는 생명 회복을 추구합니다. 헬라어 어원과 1세기 유대와 사마리아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학자들의 해석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가 윤리적 교훈을 넘어서 구조적 경제 비전 분명하게 제시해줍니다.  크레이그 블롬버그(Craig L. Blomberg)는 자신의 저서 『Neither Poverty nor Riches』에서 "성경적 경제 윤리는 소유의 축적이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의 확대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마리아인의 경제 활동은 자산을 축적하는 방향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상처 입은 자들의 회복과 공동체 안으로 귀환시키는 경제입니다. 거대한 하나님 나라의 경제를 생각해 보면 언뜻 두 데나리온은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진 책임과 장기 지속성을 생각하면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거대한 가치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